의사인 노 군과 추 군. 변호사인 박 군. 대학교수인 손 군. 이들은 내가 초임 교사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같은 반에 있었고, 내가 담임교사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뒤, 나는 그들과 다시 만났다. 그들은 그 긴 시간이 지나도록 옛 우정을 간직하고 있었고, 어느 날 저녁,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그때 그들이 그랬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서 집안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조금이라고 돕고 싶다고. 1999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그들은 매월 얼마씩의 돈을 내 예금계좌로 보내 준다. 그러면 나는 그 돈을 모아서 분기별로 한 번씩 어려운 학생을 살펴서 한두 사람에게 장학금을 준다. 이 모임은 성도 없고 이름도 없다. 아무런 규정도 없고, 추천서도 장학금 지급 증서도 없다. 물론 지급 대상자에 대해 심의하는 절차도 없다. 그들은 그냥 말없이 돈을 보내 주고, 나는 또 그냥 말없이 장학금을 주고. 그러면 그뿐. 다만 나대로의 기준은 가지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착하고 성적이 우수하면 1순위. 성적이 좀 좋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가 2순위.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지만 공부도 잘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3순위. 이렇게 순위를 정해 놓았지만 3순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장학회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영수증만은 받아둔다. 영수증을 받아두지 않았다고 해서 그 돈으로 내가 술을 마시고 밥을 먹었을 것으로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 사람들이라면 처음부터 내게 돈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큰돈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을 위해서 돈을 내기가 쉬운가. 영수증을 받아두는 것은 그런 정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장학금을 줄 때, 받는 아이에게 간단한 격려의 말을 하고는 이 돈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씨 좋은 아저씨들이 주는 것이라는 얘기를 덧붙인다. 남의 돈으로 내 생색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이 글을 쓰다가 영수증 모아놓은 것을 꺼내어 보았다. 모두 63매다. 한 사람이 여러 번 받은 경우도 있고, 한 번으로 끝난 경우도 있다. 이름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명문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도 있고, 다림질을 하다가 하나밖에 없는 교복 치마를 태워버려서 내가 치마를 구해 주어야 했던 학생도 있다. 도움에 힘을 얻어 대학을 무사히 마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면서 월급 받으면 저녁을 한번 사겠다고 연락을 해 온 사람도 있다.
많고 많은 얘기 다는 못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13년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힘겹게 사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 온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한 다발의 장미를 보낸다.
윤중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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