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도종환 글, 이철수 그림/한겨레출판 펴냄
화가가 되고 싶은 한 소년이 있었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 친척 집에서 자라면서, 부모님이 보고 싶어 편지를 자주 썼다. 편지 앞에 계절 인사를 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살폈고, 그래서 자연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가난해서 참고서 한 권 사보지 못했고, 그래서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읽었다.
도종환 시인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이야기, '접시꽃 당신'으로 가족과 함께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절,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들의 이야기까지, 한 편 한 편의 시를 통해 그의 인생을 담담하게 솔직하게 때론 절절하게 담고 있다. 자신의 삶 이야기가 들어있는 시들을 골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고 시를 들려주는 이 책은, 시인의 오랜 지기인 판화가 이철수의 채색 그림과 함께해 책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충북 보은의 황토집에서 기거하는 저자는 치유의 힘을 가진 숲을 예찬하기도 한다. 스콧 니어링의 삶을 떠올리며 숲에서의 생활을 풀어낸다.
작가는 스스로 인생의 시계를 오후 3시를 지나 5시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12시 전후한 시간은 치열했고, 그 뒤에는 지쳐있었으며 의기소침한 채 오후 시간이 지나갔다. 저무는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밤이 오기 전 찬란한 노을이 하늘을 가득 물들이는 황홀한 시간이 한 번쯤 오리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평화에 관한 이야기, 베트남에 학교를 지어주는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지구인도 결국 우리 마을 이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진리를 깨우쳐준다. 354쪽, 1만5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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