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류재성의 미국책읽기] 『숙의 민주주의와 공공 상담』제임스 피쉬킨 저

When the People Speak: Deliberative Democracy and Public Consultation

소통하고 숙고하면 갈등 해소 가능

숙의 민주주의와 공공 상담

올 한 해 우리사회에서 '소통' 만큼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단어는 없을 것 같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기업인부터 부녀회와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한 TV사극에 등장하는 세종대왕은 관료와 유생은 물론 궁녀와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고하를 막론한 정방위의 수평적 소통 능력과 의지를 갖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소통은 개인이 갖는 서로 다른 가치와 신념에 대한 열린 태도 혹은 중립적 태도를 전제한다. 말하자면 서로 상이한 이념과 지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올바른 정보가 공유되고, 그렇게 공유된 정보에 대한 숙고와 토론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즉 진정으로 소통된다면 일정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그러한 합의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상이한 가치와 지향은 많은 경우 본질적으로 대립적이다. 정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사실 관계는 이해관계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숙고와 토론은 고도로 훈련된 자세와 기술에서 비롯된다. 합의는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출발점이지만 협력의 대가가 불균등하다면 협력의 강도가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숙고가 '좀 더 나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요컨대 소통은 숙고를 위한 것이고, 숙고는 올바른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게 하며, 사실과 이해를 분리해서 판단하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사회적 합의를 위한 것들이다.

제임스 피시킨 스텐포드대학 교수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숙고의 결과를 현장 실험을 통해 경험적으로 검증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가 기획하고 실행해온 '숙의 여론조사'(Deliberative Polling)는 미국 전역에서 무작위 추출로 선정된 참가자가 지정된 숙소에 머무르며 특정한 공공 주제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에 대해 질문과 토론을 통해, 즉 숙의를 통해 스스로의 견해를 정립한다. 이렇게 정립된 견해와 최초의 견해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의 발견이다. 대체로 70% 참가자들이 숙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바꾼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국 사회의 여러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단초를 발견하고 싶은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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