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불멸-숲에 들때(이기철)

오늘 몇 리를 걸었느냐 물으면 나무가 무어라 대답하겠어요

아무리 몸을 합쳐도 도시를 이룰 수 없는 나무들이 푸름을 합쳐 숲을 이루는 것을 보십시오

나는 올해 나무가 작년 나무보다 훨씬 젖이 커진 것을 분명히 봅니다

이게 불멸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밤 오기 전에 꽃 아기들을 재워놓고 별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나무들이 보입니까

안 보인다면 당신, 몸 속 위나 창자를 말끔히 헹구고 오십시오

(……………………)

여기 와서 숲 아닌 것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겠습니까

그러니 당신, 숲에 들어올 땐

흰 발꿈치 깨끗이 씻고 정적 한 접시를 들고 들어와야 합니다

정적의 쟁반엔 때로 무한이 새싹으로 돋아나기도 하니까요

개개의 나무들은 은총이고 그 나무들이 이룬 숲은 축복입니다. 세상에 나무가 없었으면 어떠했을까요? 사람이 줄 수 없는 위안과 신성성이 나무에게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세상 모든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나무입니다.

그런 나무와 숲에 불멸이라는 명명, 천만 번 공감입니다. 그 불멸 싱싱하게 살아 지금 숲은 충만이에요. 더구나 "올해 나무가 작년 나무보다 훨씬 젖이 커"졌다는 이 탱탱한 볼륨으로 젖줄 닿은 나무마다 젖살 가득 올랐을 테고 그 숲은 달금하게 술렁일 테니까요.

사람 아닌 사람 무슨 이름으로 부르겠습니까. 여기에서 숲 아닌 숲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지혜를 가르치는 작은 나무이야기를 들으신 적 있나요? 숲에 드실 땐 깨끗이 빈 마음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정적을 깨뜨리지 마십시오. 부디 숲의 고요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십시오. 우리가 숲에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랍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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