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대구, 대한민국이 희망을 찾는 법

재정위기로 유럽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와중에 인터뷰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로마 루이스대학 피에르 루이기 첼리 총장과의 대담 기사였다. 내일이면 일흔이 되는 이 사람은 2년 전 '아들아, 조국을 떠나라'는 글을 신문에 써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이 기고문을 쓴 까닭은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고, 있다 해도 저임금 임시직밖에 없는 '희망을 잃은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이탈리아는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좁게는 대구경북, 넓게는 대한민국의 처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C씨가 생각이 났다. 보험업을 하는 C씨는 4년 전 아들을 캐다나로 유학을 보낸 데 이어 얼마 전엔 부인과 딸마저 보냈다. 표면적 이유는 자녀들의 공부이나 실제로는 가족 모두 대구, 대한민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먹고살기 위해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려 한다는 C씨의 얘기가 한동안 귓전을 맴돌았다. "더 이상 대구와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어요. 기성세대인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안 보여 떠날 생각을 굳히게 됐습니다."

희망(希望)을 찾기 어려운 것은 이 시대 대한민국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마찬가지다. 그 엄혹했던 IMF 외환위기 직후보다 지금이 오히려 '희망지수'가 떨어졌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 실정이다.

13년 전인 1998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세계 29개국 1만6천 명을 대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지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가 1위, 한국은 4위를 차지했고 일본은 최하위 29위였다. "앞으로 1년 후, 10년 후, 그리고 당신 자식들 세대에 상황이 각각 지금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는가"란 물음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서 한국이 25위인 것을 고려하면 비록 현실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무렵 대한민국 사람들의 가슴엔 여전히 희망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이 시점에 똑같은 조사를 한다면 그 결과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현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미래는 더 나빠질 것이란 비관적인 대답이 압도적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희망지수는 낙제점일 게 분명하다. 특히나 대구는 희망지수가 훨씬 더 낮으리란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값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희망이 가진 힘은 크고, 그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려움을 견디는 힘을 주는 것이 희망이고, 미래를 향해 뛰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도 바로 희망이다. 희망에다 치열한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미래를 활짝 열어갈 수 있다.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대학 총장처럼 자녀들에게 대구, 대한민국을 떠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줄기 희망을 붙잡고 모두가 마음과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중국 루쉰(魯迅)의 얘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루쉰은 "희망이란 본시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시 땅 위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희망이란 존재는 마음먹기에 달렸고, 뜻과 힘을 합치는 사람들이 많으면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없는 길을 찾아 처음으로 걷는 사람이 곧 희망을 싹 틔우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진정 대구의 지도자, 대한민국의 지도자라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지도자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에 대구는, 대한민국은 얼마만큼이나 희망을 가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대구가,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그 길을 처음으로 걷는 사람, 바로 희망을 제시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이대현/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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