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출판기념회

인간 국보를 자처하며 박학(博學)과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던 국문학자 양주동 선생이 남긴 '면학의 서(書)'라는 글이 있다. 독서를 권하는 내용으로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선생은 1970년대에 라디오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로 나와 예의 박학다식으로 듣는 이를 주눅이 들게 했는데, 마침 선생의 글을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내용 중 선생이 논어를 처음 대했을 때의 느낌을 묘사한 부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데 그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열 살 전후 때에 논어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운운이 대성현의 글의 모두(冒頭)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말씀이면 공자 아닌 소, 중학생도 넉넉히 말함 직하였다.'

이에 대한 선생의 부연 설명을 들은 기억도 있다. 천자문, 동몽선습 등 한학을 하기 위한 기초를 끝내고 논어를 공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첫 장을 넘겨 보니 너무나 보잘것없어 실망이 컸다고 했다. 감히 선생의 글에 토를 달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학이시습지라는 첫머리보다는 세 번째에 나오는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 구절이 더 이상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냐는 뜻인데 공자 말씀이라기보다는 노자나 장자의 글에 더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곳곳에서 출판기념회가 한창이다. 이름은 생소해도, 경력을 보면 모두 내로라하는 자리에 앉았던 분들이다. 대개 여러 직책을 거치면서 겪은 일이나 앞으로 자신의 포부를 쓴 자서전 형식이 많다. 내용도 엇비슷하다. 어느 자리에 있었든지 늘 국민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노심초사했던 모습이 구구절절하다.

이러한 출판기념회 열풍은 4년마다 반복된다. 총선 등 각종 선거 출마에 앞서 출판기념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름을 알리려는 선량 후보가 많아서다. 이들에게 공자님 말씀을 들먹이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말라고 하다가는 몰매 맞기 십상이다. 낙선보다는 차라리 군자 되기를 포기하는 쪽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이견이 없을 것 같은 공자님 말씀이라도 쓸 곳은 따로 있는 법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