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내 건강만 믿었는데…."
건강 이야기를 꺼내자 송근옥(50) 씨가 말을 더듬었다. 송 씨는 올해 8월 간암 진단을 받았다. 아픈 자식이 있고 든든한 학벌도, 모아둔 돈도 없는 그가 의지할 것은 건강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미련하게 건강도 안 챙기고 살았나 몰라요." 간암 2기, 송 씨의 몸은 폐까지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다. 하지만 송 씨가 감당하기엔 너무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맨몸으로 살아온 인생
13일 오후 2시 대구 달서구 상인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햇빛이 훤하게 비치는 시간인데도 송 씨의 집 안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불을 켜자 방 안은 환해졌지만 송 씨 부부의 얼굴에 깔려 있는 그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8월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직전까지 송 씨는 성서에 있는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했다.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어요. 내가 쓰러진 줄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기계 열기와 고된 노동 때문에 몸이 축나 쓰러진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송 씨는 간암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위해 대학병원으로 옮겨가야 했다. "회사에서 건강검진 받으라고 할 때도 일부러 안 했는데.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있었어요." 만약 그날 쓰러지지 않았다면 송 씨는 지금까지 암의 존재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송 씨는 한 직장에 오래 있어본 적이 없다. 가장 오래 일했던 곳이 달성군 현풍의 플라스틱 공장으로 5년간 다녔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을 전전했던 그는 몸 쓰는 일을 택해야 했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장에서 밤샘 근무를 피하는 추세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송 씨는 이방인들과 뒤섞여 말없이 밤 근무를 했다. 계속 야간 근무만 하다 보니 몸이 힘들어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송 씨는 간암 때문에 올해 7월 취업한 자동차부품공장에서 두 달 만에 나와야 했다.
◆무거운 가장의 어깨
주변 사람들은 송 씨보고 '자식 복이 없다'며 가여워한다. 하지만 송 씨는 그 말이 듣기 싫다. "애가 어쨌든 간에 내 피가 섞인 내, 내 자식 아입니까." 그가 다시 말을 더듬었다. 서른 넘어 결혼한 송 씨는 7년 만에 아들 무성이(가명'13)를 낳았다. 어렵게 얻은 아들인데 무성이의 성장은 보통 아이들보다 더뎠다. 무성이는 세 살이 됐을 때 겨우 '엄마'라는 말을 했고 스스로 걷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애가 좀 느, 느리다고 생각을 했죠." 아내 박미경(43) 씨도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더듬었다. 무성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했던 말을 수십 번 반복하기도 했고 밖에서 나쁜 단어를 배워오면 부모님께 내뱉기 일쑤였다.
부부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자폐증입니다." 송 씨는 아들이 TV에서만 접했던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해 3월 무성이는 일반초등학교 대신 특수학교로 진학했다.
지금 무성이는 송 씨 부부와 함께 살지 않는다. 최근 폭력적인 성향이 심해져 송 씨를 마구 때렸고 아픈 아빠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복지관의 권유로 동구에 있는 재활원에 무성이를 보냈고 방학 기간이 되면 집에 데려온다. 그래도 무성이는 아빠의 병을 아는지 집에 전화를 할 때마다 "아빠 아파? 아빠 아파?" 하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는 어머니에게도 죄인이다. 어머니(79)는 청각 장애가 있어 자신이 직접 만든 수화로 송 씨와 소통했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치매까지 앓아온 어머니를 송 씨 부부가 돌봤지만 암 진단을 받은 뒤 노모 간병까지 감당할 수 없었다. "어머니한테도, 자식한테도 죄인이죠."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약값만 70만원
송 씨 몸은 암이 간에서 폐까지 전이돼 시술과 수술이 불가능하다. 병원에서도 수술 대신 암 전이를 늦추기 위해 항암제인 '넥사바'를 처방했다. 문제는 약값이다. 지난달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돼 병원비나 다른 약값은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넥사바는 비급여 약제로 가격이 매우 비싸다. 그는 이날 오전 병원에서 타온 약 봉지와 처방전을 서랍에서 꺼냈다. "14일치 약을 탔는데 32만원 넘게 돈이 나왔어요." 한 달치 약값만 60만원이 넘어 생계급여 70만원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친척들과 이웃들의 도움으로 여태까지 버텨왔지만 더는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할 염치가 없다. 송 씨는 이제 돈이 없으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건강 하나만 믿고 살았는데." 송 씨의 뒤늦은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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