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겨울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피켓을 든 30여 명의 절규가 있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매주 수요일 이곳에서 항의집회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시작한 집회가 14일 1천 번째를 맞았다. 매주 수요일 열린다고 해서 '수요집회'라고 이름 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집회'는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집회를 취소하고 올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항의집회를 추모집회로 대신한 경우를 빼면 20년 가까이 매주 수요일 정오에 빠짐없이 이어져 왔다.
14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도 1천 번째를 맞은 수요집회가 열렸다. 매주 수요일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행사가 이날만큼은 대구, 부산, 광주 등 전국적으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효성여고 봉사 동아리 학생들의 몸짓 공연 순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날 집회에는 엄마 손을 잡고 눈망울을 빛내던 어린아이부터 교복 입은 여고생, 젊은 연인,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까지 300여 명의 시민이 무대를 가득 메웠다.
남자친구와 함께 집회 현장에 함께 온 김선미(35'중구 동인동) 씨는 "수요집회가 벌써 1천 회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양국 정부의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여전히 크게 느껴지지 않아 '아직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대구지역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행사가 열렸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중학교 역사 교사 문현일(42) 씨는 "10여 년 전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을 입으신 어르신들을 위한 기금마련 행사에 우연히 참여한 후 이런 행사에는 처음 참여한다"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위안부 관련 행사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 현장을 함께한 이수산(83) 할머니는 "중국에서 지내다 문제 해결을 위해 7년 전 한국을 찾았다. 독일과 일본도 수차례 항의 방문했다"며 "상당수 일본 국민들과 대부분의 한국민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정작 양국 정부는 사태 해결에 뒷짐만 지고 있다"고 항의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행사장에 머물던 이선옥(87)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를 입은 채 억울하게 죽어간 할머니가 셀 수도 없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불쌍하고 속상하다. 모두 죽기 전에 해결돼야 할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안경욱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입으신 어르신들 대부분이 80대 중반을 넘어섰다. 대구에 계신 할머니 중에는 병상에 계신 분도 있고 일주일째 식사도 못 하는 어르신도 계신다"며 "걷기 대회, 캠페인 등의 행사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홍보에도 힘써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1천 회를 맞은 수요집회는 2002년 3월 500회 집회 때 최장기 집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단일 주제 부문)된 바 있다. 현재 정부에 공식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모두 234명으로, 이 중 대구에는 5명, 전국적으로는 63명이 생존해 있다.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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