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선이 지난해부터 나왔는데 거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어선들은 그물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다가 상선을 가로막아 방해하고 이것을 금지시키려고 하면 도리어 으르렁대면서 공갈하고 사람을 구타하기도 한다. 단속을 해달라."(조선 철종 3년)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 서해에서 벌어진 중국의 약탈과 만행, 행패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다만 시대가 달랐고, 우리의 대응, 중국의 대처 방법이 차이 났을 뿐이었다. 역사적으로 우리 서해는 중국, 일본의 노략질과 분탕에 시달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불법 조업 단속 해경을 죽인 인해전술 떼거리 중국 선단의 만행은 150여 년 전 모습과 너무 닮았다. 1852년 조선 철종 3년 청(淸)나라 어선들이 풍천'장연'옹진 등 우리 서해 곳곳에서 불법 조업과 행패를 일삼고, 단속에 반항하며 폭력을 행사하자 청에 조치를 요청했다.
청의 대응은 지금과 달랐다. 청은 "선적들이 국경을 넘어가 물고기를 잡는다면 관례에 따라 징벌하여 처리하겠다. 관할하는 관원도 죄를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겠다. 강희(康熙) 때의 유지(遺旨)를 따라 이것을 엄히 조사,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청은 이런 약속과 함께 과거 1710년 강희제가 내린 유지까지 거론하며 조선이 강력 대처할 것을 오히려 주문했다. 강희제 유지에 따를 경우 조선 조정은 불법 조업하는 어민들을 모두 체포해 보내어 죄를 다스리게 하거나 아니면 대포를 쏘아서라도 그들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정조 사후 63년', 박현모)
청이 대포를 동원해서라도 강력 대응토록 주문했다면 중국의 불법 조업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 남는다. 특히 조선이 '소중화'(小中華)의 사대(事大) 외교 정책을 폈던 점까지 감안하면 중국인 횡포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중국의 서해 노략질은 신라 때 더 심했다. 중국인들은 서해에서 신라인 납치와 인신매매, 노예무역의 해적 행위를 자행했던 것이다. 신라 장수 장보고가 흥덕왕에게 한 보고(삼국사기)는 당시 실상을 잘 전하고 있다.
장보고가 "중국을 돌아보니 우리 백성들을 노예로 삼고 있다. 청해(淸海'현 완도)를 지켜 적으로 하여금 사람을 약탈하여 서쪽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자, "왕은 장보고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청해진을 설치케 했다. 그 후로 해상에서 우리 백성을 사가는 자가 없어졌다"는 내용이다. 주일 대사를 지냈던 역사학자 에드윈 라이샤워가 높이 평가한 '해양 상업 제국의 무역왕' 장보고의 강력한 해상 활동 덕이었다.
우리 서해 노략질엔 일본도 가세했다. 고려조에 들어서 본격화된 노략질과 왜구(倭寇)의 극성으로 고려 패망은 앞당겨졌다. 이런 오랜 서해 약탈사가 지금 중국에 의해 재연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 일본의 우리 바다 약탈사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제해(制海)하지 못했거나 왕조의 정정(政情)과 민심이 어수선할 때 기승을 부렸다는 점이다. 바다에 익숙했고 중국 요서와 양자강 일대까지 진출, '백가제해'(百家濟海'널리 바다를 다스리는 나라)라 불렸던 백제 때나 중국 동해안 지역을 경략(經略)했던 장보고 시절엔 그렇지 않았다.
신라 후반기, 고려 말, 조선 후기 모두 민심이 이반되고 관료는 부패하는 등 왕조가 기울어져 갈 때 서해는 노략질의 대상이었다. 중국은 '주변에 정복할 수 없는 16국이 있다. 첫째가 고려 즉 조선이고, 그다음이 안남 즉 베트남'이라 했던 명(明)나라 태조의 유훈을 새기며 우리를 경계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수선할 땐 서해는 유린됐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 왕조 시절 서해가 유린될 때와 다른가. 피해자는 우린데 저자세고 중국은 되레 큰소리다. 중국의 우리 대사관이 쇠구슬탄의 공격을 받고 있다. 중국 순찰선이 우리 땅 이어도와 가거도까지 순찰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지난 10월 한국과 필리핀이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나포하자 "두 나라가 이런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대포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 그들은 지금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오만한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경제 10위권,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노래하는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정녕 없단 말인가.
鄭仁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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