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시와 함께] 우리 동네 송림서점 아가씨(강문숙)

는, 먼지 털다 말고 화장을 한다.

보라색 아이섀도를 엷게 바르고

책장 넘기듯, 분홍립스틱을 바른다.

오늘은 아리보리색 모자를 손질해야지.

무표정하게 꽂혀있던 책들 사이,

느리게 시간은 몸을 뒤척인다.

활자들이 잠깐 기지개를 켠다.

교보문고가 한 달 동안 판 책을 쌓으면 63빌딩의 130배, 1톤 트럭으로 1130여 대 분량이라고 신문에 난 날, 당연히 기뻐해야 할 나는 왜 우울해지는지.

오래 꽂혀있던 저 책들처럼, 그녀를

뽑아들고 펼쳐 본 사람 아직 없다는데,

그녀가 아주 바빴으면 좋겠다. 화장도 못하고

모자의 챙이 구겨져 속이 상했으면 좋겠다.

-필자 임의로 줄임-

책이 점점 읽히지 않는다는 이야기, 인문학이 위기라는 이야기, 머지않은 미래에 시가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 어제오늘이 아니죠. 시를 더 이상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시집이 쏟아지는 기현상은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한가하게 화장을 고치고 있는 송림서점 아가씨와 서점에서 먼지를 쓰고 있는 책들의 비유는 시인의 가벼운 터치에 힘입어 실감나게 적요하고 쓸쓸해요. 송림서점 그녀가 바빠질 확률은 시집이 팔릴 확률만큼이나 기대하기 어렵다면 우린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나요?

손안의 혁명, 아이폰이나 갤럭시 탭이 우리의 의식을 사고파네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책장 넘기는 대신 터치만 하면 다 가르쳐 주니까요. 음성인식만으로 모든 명령어가 실행된다니까요. 테크놀로지의 세계에도 고통과 상처와 배반과 슬픔이 있을까요? 사랑과 이별도 이모티콘으로 간단히 대체되는 시대의 가벼움이여, 시의 무기력함이여. 아무도 아프지 않은 무서운 날들이 오고 있네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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