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모·동생 숙청 '인정사정없는 절대자'

김정일은 누구인가

1941년 2월 16일에 김일성과 김정숙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0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고, 1964년 4월에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 그는 소련과 폴란드, 동독, 중화인민공화국 등을 두루 여행하였고, 비공식적으로는 미국과 프랑스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조선노동당의 평당원으로 활동하다가 1964년 6월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 숙부 김영주와 이복 동생 김평일을 제치고 후계자 지위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1994년 집권 이후 이들은 정계에서 축출되었고, 김평일은 외교관으로 떠돌고 있으며, 계모 김성애 역시 정치적으로 숙청됐다.

1980년 10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서 지위가 확정되었다. 이 대회에서 김정일은 최초로 대중 앞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거쳐 199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을 넘겨받는다.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뒤 1992년 4월 조선인민군 원수 칭호를 받았으며, 1993년 4월 국가주석과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겸임조항을 정령에서 삭제하면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되었다.

김정일은 이어 조선노동당의 당권도 장악하였다. 초기에는 조선인민군 원수로 취임하였고, 이후 대원수에 취임하지 않은 대신 다른 원수들과의 구별을 위해 다른 원수들은 조선인민군 원수라 하고 자신은 공화국 원수라 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자 유훈통치기간을 발표하였으나 사실상의 통치권자가 되었다. 한편 김일성을 영구주석으로 추대하는 안을 발표한 뒤, 사실상 국가주석직을 폐지하였다.

1997년 10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에 선출되었다. 1998년 11월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과 평양에서 회담을 가졌다. 1999년 1월 초에는 신년사에서 새해를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라고 선언하였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과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가진 뒤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은 분단 52년 동안 서로 대립하고 있었던 남북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경제교류 활성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금석이 되었다.

2007년에는 10월 2일부터 10월 4일에 걸쳐 노무현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과 두 번째 남북 정상 회담을 가졌다. 회담의 결과는 남북간 신뢰 구축, 협력 강화 등의 목표를 담은 10'4 남북 공동선언(정식 명칭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발표되었다. 김대중의 평양 방문 때 다음번 회담에는 서울로 답방하겠다고 하였으나 방문하지 않았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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