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실패한 경험이 있다. 바로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의 대응이다. 당시 국내적으로 조문 파동을 겪었다. 김영삼 정부는 조문 파동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잃었다.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신중하게, 국민들의 공감대를 모아, 미래지향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북한 붕괴론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해야 한다. 분명 김정일 후계 승계 과정과 비교해 보면, 김정은은 너무 젊고, 국정 경험이 부족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후계 체제의 제도화 과정이 진행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당의 인사가 이루어진 상태고, 김정은이 후계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후계자로서의 상징화 사업도 꾸준하게 진행했다.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후견그룹도 존재하며, 국방위원회의 실무 기능도 강화되었다.
이 과정은 김정일 스스로 준비한 것이다. 건강이 악화되면서, 본인 자신이 후계 체제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앞당겨진 측면이 있으나, 예견된 상황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처럼, 북한 붕괴론이나 권력 투쟁설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지 북한의 객관적 현실이 아니다.
물론 김정은 체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미국과의 관계를 비롯한 외교 환경 개선, 경제 발전, 체제 유지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남겨진 과제는 공통적이나, 해결의 방법은 다를 수 있다.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정책 결정 구조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후계자를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겠지만, 동시에 분야별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는 분권형 리더십도 나타날 것이다.
김정일 시대에 지도자의 결단이 특징이었다면, 김정은 시대는 부처 간 협치를 중시할 가능성이 있다. 관료체제 내부의 조정 능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협치는 명분과 근거를 중시한다. 북한 정치가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제도의 역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협치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시간이 걸린다. 부처 간 의견을 조정하다 보면, 소극적일 수도 있다. 김정은 체제의 특징들을 분석해서, 북한과의 협상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과도기의 대북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적극성이다. 북핵 문제와 같은 중요한 협상에서 북한의 선택을 기다리기 전에 먼저 한국과 미국이 적극적 이니셔티브를 행사해야 한다. 협상을 주도하면서,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전제로 대북 정책을 추진한다면, 결국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만 높아질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부의 정보 능력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한 정보 접근은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보는 접근해야 얻을 수 있다. 정보가 없으면 판단이 흐려진다. 북한과 가장 밀접한 중국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영향력을 의미한다. 남북 관계 중단이 인적 정보의 부족으로 나타났고,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중 양국의 갈등이 정보력의 부재 원인이라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조문 문제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성숙한 대응을 해야 한다. 남남 갈등을 피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선택,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 차원의 조문은 외교적 행위다. 국제정치에서 적대국 사이의 조문 외교 사례는 적지 않다. 1975년 장개석, 그리고 1976년 모택동의 사망 당시 중국과 대만은 조의를 표명했다. 국공내전의 당사자들이 아닌가? 그리고 1994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북한에 조전을 보내고, 제네바 현지에서 조문을 한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 국내적으로 조문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조문했고, 3개월 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네바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이 외교다.
조문단 파견이 어렵다면, 최소한 조의를 표명하고, 조전을 보낼 필요가 있다.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와 남북 관계 재개를 위해 필요하다. 주변국이 외교를 할 때, 우리만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정치가 아니라 외교이고, 이념이 아니라 능력이다.
김연철/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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