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평양 호텔 직원들 통곡…점심도 못 먹어"

김정일 사망 발표 당일 평양 분위기 전한 민간단체 도영주 씨

"호텔에 들어서는데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장막으로 덮여 있더군요. 처음에는 누가 초상화를 훼손해서 큰 질책을 받았나 보다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던 지난 19일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도영주(48) 상임이사는 평양의 보통강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호텔 직원들은 모두 울고 있었고, 여직원들은 너무 많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사람들도 많았어요.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더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흘러나오더군요. 아, 이거 큰일이다 싶었지요."

도 상임이사는 대북지원민간협력단체협의회 소속으로 일행 10명과 함께 17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 머물렀다. 20일 오후 베이징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도 상임이사와 힘들게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그는 "우리 일행은 북한에 지원한 밀가루와 의류 등 지원물품의 분배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은 황해북도 강남군 장교리의 유치원과 탁아소, 소학교 등을 방문한 날이었다고 했다.

"오전에 방문 일정을 마치고 정오에 점심식사가 약속된 식당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식사가 취소됐으니 호텔방으로 돌아가 달라는 겁니다.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와서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어요. 깜짝 놀라 호텔 바깥을 내다봤지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동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도 상임이사 일행은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오후 내내 호텔에 머물렀다고 했다. 민간협력을 논의하던 북측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하고 있어 사업 얘기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 점심식사를 요청할 수도 없어 오후 4시가 돼서야 늦은 점심을 먹었다.

도 상임이사는 "호텔 내부는 침통한 분위기가 흘렀고, 하도 울어 눈이 부은 여직원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면서 호텔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호텔 창문으로 바라본 평양 시가지 모습은 평소보다 사람이 조금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도 상임이사 일행은 20일 오전 7시 평양 순안공항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떠나는 항공편을 타기 위해 숙소를 떠났다. 그는 "김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후 평양에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였지만 공항은 차분하기만 했다"며 "오히려 평소보다 한산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고 전했다.

도 상임이사 일행은 오전 9시 고려항공을 이용해 평양을 떠났다가 항공기가 기체 이상으로 회항하면서 오전 11시가 돼서야 다른 항공기로 갈아타고 평양공항을 떴다. 베이징공항에는 주중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나와 도 상임이사 일행을 맞이했다. 도 상임이사는 항공기 연착으로 예약했던 항공편을 놓쳤고, 20일 오후 9시40분 겨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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