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가치 재조명 '3大 문화권 사업'] (5)가야의 유산, 세계문화유산으로

1,500년전 이미 製鐵 상감기법…학계 '발칵'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가야금관은 당시의 뛰어난 금세공술을 보여주고 있다. 국보 138호로 지정된 이 금관은 경기도 호암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가야금관은 당시의 뛰어난 금세공술을 보여주고 있다. 국보 138호로 지정된 이 금관은 경기도 호암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고령 지산동 45호 고분에서 출토된 목긴 항아리. 곡선미와 우아함을 뽐내고 있다.
고령 지산동 45호 고분에서 출토된 목긴 항아리. 곡선미와 우아함을 뽐내고 있다.
고령 지산동 30호 고분에서 나온 어린아이용 금동관.
고령 지산동 30호 고분에서 나온 어린아이용 금동관.
고령 지산동 32호 고분에서 나온 은 상감 기법을 적용한 고리자루.
고령 지산동 32호 고분에서 나온 은 상감 기법을 적용한 고리자루.

서기 100년대 중반부터 562년까지 한반도 동남부 일대를 호령했던 가야는 뛰어난 제철기술, 아름다운 문화예술, 특유의 사상과 신앙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철갑옷과 투구, 고리자루 큰 칼과 농기구 등은 가야의 독보적 제철기술을 뽐내고, 가야금과 우륵 12곡은 한국 고유의 음악과 악기의 뿌리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보여준다.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가야 토기와 독특한 양식의 금(동)관은 가야 조형예술의 극치를 드러내고, 산재한 암각화와 순장무덤은 가야인들의 신앙과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학계와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을 중심으로 가야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기술, 철기와 상감기법

가야의 철 기술은 한반도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철 관련 무기류와 농기구 등이 같은 시대에 가장 많이 생산됐을 뿐 아니라 제철기술도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한반도 전체에서 출토된 철갑옷의 90%가 가야 지역에서 나왔고, 이 중에서도 고령, 경남 합천 등 대가야 지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됐다. 수십 개의 철판 조각을 오려 갑옷 형태로 준비한 뒤 주물을 통해 만든 수십 개의 못으로 철판을 연결하고, 곡면을 구부려 두드리는 등의 기술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지산동 32호 고분에서 나온 고리자루 큰 칼(環頭大刀)은 역사학자들은 물론 조형예술가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1980년 흙과 녹으로 뒤덮인 봉황 모양의 고리 부분에서 당시 문화재전문위원의 X선 촬영을 통해 은으로 상감한 가야 철의 '상감기법'이 최초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도 아닌 1천500여 년 전, 이미 대가야 제철기술자가 오묘한 은 상감기법을 구사했다는 것.

이전 학자들은 상감기법이 통일신라시대 '칠전'(漆典)이라는 관청이 있었던 기록으로 미뤄 이때부터 이 기법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고려시대에는 자개를 재료로 한 나전칠기가 발달해 중국 교류품에 포함됐고, 12세기 전반부터 고려청자에 상감기법이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전인 가야시대에 상감기법이 사용됐다는 것은 가야 제철기술의 뛰어남을 방증하고 있는 것.

◆문화예술, 우륵 가야금과 빼어난 조형예술

성열현(현재의 고령 또는 의령 추정) 사람, 우륵은 1천500여 년 전 오동나무와 돌배나무를 이용해 한반도 고유의 악기인 가야금을 만들었다. 순수한 자연의 재료만으로 자연의 소리를 재현한 것이다. 또 가야금을 이용해 대가야의 영향력이 미쳤던 지방과 소국의 이름을 본떠 우륵 12곡을 만들어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유일한 현존 최고(最古)의 가야금은 일본 나라현 동대사 안 일본 왕실 보물창고인 정창원에 '시라기고토'(신라금)란 이름으로 보존돼 있다. 우륵이 신라에 망명한 뒤 통일신라와 왜와의 교류를 통해 800년대에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다.

가야 토기와 금관 등 금속 장신구는 가야의 빼어난 조형예술을 대표하고 있다.

신라 토기는 색깔이 검고 직선적이고 날렵하다. 반면 가야토기는 밝고, 우아하며 곡선의 부드러움을 지녔다. 가야토기 중에서도 대가야(고령)식, 금관가야(김해)식, 아라가야(함안)식, 소가야(고성)식 등 동일성 안에서 다양성을 갖춘 특색을 지닌다. 고령 지산동 45호분에서 나온 목긴 항아리(長頸壺)는 도톰한 젖꼭지 모양의 뚜껑 손잡이, 갸름한 허리와 풍만한 몸통이 조화를 이뤄 여인의 몸매를 닮은 대표적인 가야 토기이다.

고대 금속공예의 백미로 꼽히는 금관은 삼국시대를 통틀어 10점에 못 미친다. 이 가운데 호암미술관 소장 금관(국보 138호), 일본 도쿄박물관 소장 금관 등 2점은 대가야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또 고령 지산동 30호, 32호 고분에서 금동관이 나왔고, 지산동 45호 고분에서도 금동관 장식이 나왔다. 특히 지산동 30호 고분에서 나온 어린아이용 금동관의 경우 그 주인공에 대한 규명을 비롯해 학술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다.

가야 금(동)관은 풀잎이나 꽃잎 모양의 솟은 장식이 금동띠 고리에 꽂혀 있고, 꼭대기에는 보주형(양파모양)의 봉우리가 올라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초화보주형이다. 신라의 날출(出)자나 새 날개(鳥翼) 모양의 솟은 장식과 뚜렷이 구분되는 예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상과 의식, 암각화에 담긴 원시신앙과 껴묻이 풍습

금관가야에 김수로왕 건국신화가 있다면, 대가야에는 가야산을 모태로 한 건국신화가 있다.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와 산신 이비가가 가야산 중턱 상아덤에서 감응해 대가야 뇌질주일(1대 이진아시왕)과 뇌질청예(금관가야 1대 김수로왕)를 낳았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다.

또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에는 대가야 선조들의 원시신앙을 엿볼 수 있는 바위그림인 '알터 암각화'와 '안화리암각화'가 잘 보존돼 있다. 고령읍 장기리 금산 자락에 위치한 알터마을(옛 개진면 양전리)에는 태양, 귀신 또는 사람 얼굴 모양 문양이 길이 6m, 높이 3m의 암반에 새겨져 있다. 서너 겹의 동심원, 17개의 직사각형 문양 등을 통해 200년대 대가야 선조들의 신앙과 사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가야산에서 흘러내린 대가야 젖줄의 하나인 안림천(야천) 기슭, 쌍림면 안화리에도 알터암각화와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그림이 새겨져 있다.

고령 지산동 44호 고분에서 발견된 대규모 껴묻이(殉葬)를 비롯한 순장 고분들을 통해 가야인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난다. 삶의 세계가 죽음의 세계로 이어진다는 '계세사상', 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영혼불멸의 사상'을 가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가야 고분들이 모두 도읍지나 집단 거주지를 감싸는 산이나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왕이나 귀족세력이 죽어서도 국가나 자신들의 영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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