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너무 두려워 버틸수가…엄마·아빠 죄송해요"

20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A(13) 군이 남긴 유서에는 그동안 친구들로부터 당한 폭행과 금품갈취에 대한 진술이 소상히 담겨 있다.

그는 유서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살을 결심하면서도 친구들의 협박에 못 이겨 '부모님께 불효했던 점'을 반성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가족 걱정을 했고 아파트 비밀번호를 아는 친구들이 집에 들어올 것을 걱정해 번호를 바꾸라는 당부를 했다. 눈물을 쏟으며 '엄마 아빠 사랑해요'로 글을 마무리 지은 뒤 두 눈을 질끈 감고 7층에서 몸을 던졌다.

◆A군 "상습적인 폭행과 갈취"

A군이 쓴 A4 용지 4장의 유서를 보면 가해자 2명의 행위는 동물적 학대 그 자체였다. 그는 친구 2명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상습적인 폭행과 갈취를 당해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들은 매일 A군의 집에 찾아와 지속적으로 폭행, 갈취, 협박했다. 단소로 폭행하고, 전선으로 손을 묶어놓고 엉덩이를 때렸으며 발로 차기도 했다는 것. 또 피아노 의자에 엎드리게 한 후 칼로 상처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팔에 불을 붙이려고도 했다고 A군은 유서에서 밝혔다. 심지어 목에 줄을 걸고는 흘린 음식물을 입으로 주워 먹게까지 했다고 했다.

또 A군의 집에서 라면, 견과류 등을 마음대로 먹고, 옷까지 뺏어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서에는 친구들이 강제로 컴퓨터 게임을 하도록 협박했고, 담배를 피우게 했으며, 수업시간에 공부도 하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물로 고문을 하고, 모욕을 줬으며, 문제집도 뺏어갔다고 밝혔다. 그들에게 돈을 바치기 위해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는 A군. 이달 들어 수차례에 걸쳐 자살을 결심했지만 어머니가 눈에 걸려 포기했다고 적었다. 친구들의 괴롭힘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미치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A군은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고도 했다.

◆경찰 "가해 학생 철저 조사"

대구 수성경찰서는 A군이 유서에서 거론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괴롭힘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2명을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해당 학교 측의 학생 생활 지도에도 문제가 없었는지,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망연자실한 부모와 이웃들

A군의 부모는 "학교에서 학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야 할 것이다"며 "대한민국에 살기 싫다. 유서는 아들이 당한 괴롭힘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울먹였다. 이웃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학교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학교와 교사가 똑같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아동청소년상담센터 황정향 원장은 "청소년들은 친구들과의 집단 문화가 중요한데 초기 단계에서 갈등을 치유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창환'황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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