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게리 폴 나브한 /아카이브

재배식물 기원지 여정 따라 씨앗과 농업의 과거·현재·미래 조명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위대한 식량학자 바빌로프 이야기다. 저자는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씨앗을 찾기 위해 세계 구석구석을 탐사한 러시아 식량학자 바빌로프의 삶에 매료되어, 그의 일지를 나침반 삼아 세계 곳곳을 누볐다.

전 세계 다섯 대륙의 작물종자를 수집한 유일한 과학자이자 인류의 새로운 농법을 찾아 115회의 원정을 주도한 바빌로프는 인류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과업에서 농업생물다양성은 주춧돌에 해당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188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바빌로프에게는 소작농이었던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농업학자의 길을 선택한 바빌로프는 비범한 언어능력으로 세계 15개 언어를 구사하며, 전설적인 페르시아 밀을 찾아 파미르고원에 올랐고, 수천 년에 걸친 식물들의 요람인 이탈리아 포 계곡을 찾았다. 또한 만신창이가 된 곡창지대인 레바논과 시리아를 방문했으며, 오아시스가 남긴 자연의 발자국을 더듬기도 했다.

세계 곳곳의 종자 돌보미들인 농부에게 배우려는 마음가짐과 종자를 실어 나를 노새, 이 두 가지로 무장한 바빌로프는 우리의 주식이 된 수천 종의 식물을 작물화한 산악지대 원주민들의 오랜 농업문명에 지리적 공통점과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과학사상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바빌로프가 주창한 '다양성 중심지' 이론이다.

약간의 수정을 거치긴 했지만, 바빌로프의 이론은 아직까지도 농업 유전학의 기초가 된다.

에티오피아 원정에서 바빌로프는 미래의 작물 선발과 재배에 활용할 종자를 성공적으로 수집했고, 소련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식량안보를 획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에티오피아에 독특한 생물문화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바빌로프의 놀라운 '발견'으로 에티오피아 고산지대는 지상에서 가장 독특한, 여러 가지 작물의 기원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뿐만 아니라 바빌로프의 원정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끼며 훗날 작물을 보존하는 데 끈질기게 노력을 기울였다. 에티오피아 농부들이 오랫동안 작물의 탄력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지역에서 수입된 하이브리드 종자와 비료 대신 다양한 재래종 씨앗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사과와 배가 태곳적에 탄생한 곳인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는 '사과의 아버지'란 뜻이다. 1929년 바빌로프가 알마아타를 방문했을 때 야생사과 숲을 안내한 열여섯 살짜리 카자흐스탄 소년은 아흔두 살의 노학자가 되어 나브한 일행을 맞아주었다. 바빌로프 덕분에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자라는 야생사과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 그를 학자의 길로 이끈 것이다.

바빌로프가 처음 종자를 수집한 후 종자의 특성을 연구, 평가하고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어 소련의 식량안보에 기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소련 시민은 바빌로프의 종자에서 선발된 400종의 신작물에서 실제로 식량을 얻었다. 그 덕택에 소련이 통제하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기근도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1943년 바빌로프가 스탈린 농업정책 실패의 희생양이 되어 감옥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4반세기 후였다.

농업생물다양성 없이는 작물의 질병과 전염병, 가뭄과 홍수, 지구온난화와 세계화가 낳은 경제적'환경적 부작용 앞에서 세계 식량 체계는 무력해지고 말 것이라는 바빌로프의 신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바빌로프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저자 나브한은 세계 여러 곳의 농지와 공동체를 꼼꼼히 둘러보며 바빌로프 원정 당시와 달라진 점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여정을 뒤쫓는 길에서 우리는 지난 세기 우리 인류가 작물다양성 4분의 3을 잃고, 지난 7년 동안 한 달에 한 가지 꼴로 가축 품종을 잃은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나브한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슬로푸드 운동 같은 데에 참여하라"고, "멕시코의 전통적인 계단식 경작지든, 도시의 공공 텃밭이든, 땅을 일구며 씨앗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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