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967년 北 공비도발 응징작전 비화 소설로…가위주먹

가위주먹/ 구광렬 지음/ 화남 출판 펴냄

1967년 9월 609특공대장으로 복무하던 육군 대위가 대원 3명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의 개풍군으로 침투했다. 침투조는 지뢰를 설치하던 인민군과 맞닥뜨려 현장에서 13명을 사살했다. 이후에도 이들 대원들은 두 차례 더 북으로 침투해 인민군 22명을 사살했다.

작가 구광렬(55'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 교수가 1967년 '북 응징보복작전'을 소재로 한 실화소설 '가위주먹'을 펴냈다. 당시 바로 그 육군대위였던 전 육군참모총장의 경험담과 관계자들의 증언, 현지답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967년 봄부터 강원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무장공비들이 출현했다. 북한은 대간첩 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그 무렵 월남전에 전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남한을 무너뜨릴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1967년 3월 조선노동당 제4기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는 데 총역량을 집중, 무장공비를 전후방으로 침투시켜 민심을 교란하라'는 지령을 전군에 하달했다. 이후 공비도발이 급증해 1966년 57건에서 1967년 118건으로 증가했다. 휴전선 인근 아군과 미군의 GP가 수시로 습격 받았다. 21사단 부연대장 김두표 중령과 두 딸, 그의 처형이 살해당하는 등 공비들은 국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대책'을 세운다. 대위 이진삼은 면밀한 심사를 거쳐 15명의 전향자 중 백태산(26), 박상혁(19), 김의행(26), 이기철(27) 등 4인을 선발한다. 이들은 공비로 남한에 침투했던 사람들이다. 불과 2,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공비들과 국군이 의합한 것이다. 이진삼 대위는 공비들의 마음을 돌리기 이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 술을 마시고, 옛날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지은이 구광렬은 "올해 초 신문에서 '북 응징보복작전' 기사를 보고 '묻을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며 "먼저 이 사실을 밝힌 현직 의원에게 연락한 뒤 60여 차례 인터뷰한 것을 소설로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내용에 허구를 더해 꾸민다는 것은 사실을 펼쳐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다"며 "진술과 면밀한 답사를 통해 당시 사실을 90% 이상 소설로 녹여냈다"고 말했다.

소설은 마치 전투일지처럼 상세하다. 우이동 골짜기에서 이뤄진 훈련에서부터 3차(1967년 9월 27일, 10월 14일, 10월 18일)에 걸쳐 치러진 작전까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실감 나게 펼쳐진다.

작가는 "작품 속의 지명과 좌표는 모두 실제 그대로다. 침투지역이었던 화천, 연천의 비무장지대를 수차례 답사했다"며 "북파 작업에 동참했던 분들 중 이미 작고한 분도 있고 숨어 사는 분도 있다. 대한민국을 위해 세 번이나 북으로 올라간 분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을 하는 마음으로 썼다. 신분 보호를 위해 성(姓)은 바꿨지만 그분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은 그대로 두었다"고 말했다.

지은이 구광렬은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를 다룬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등 주로 '왼쪽'에 서서 작품을 써온 작가다. 왜 '오른쪽' 성향의 소설을 쓰느냐는 물음에 그는 "책이 잘 안 팔려도 상관없다. 1967년 제3공화국 시대에 일어나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비사가 누군가에 의해 정리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김영현 실천문학사 전 대표는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을 수차례 오가며 확인한 꼼꼼한 현장답사와 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당시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꾸며진 이 소설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분단된 조국의 뼈아픈 상처를 돌아보고,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 제목 '가위주먹'은 손을 내밀어 그 모양에 따라 순서나 승부를 정하는 '가위 바위(주먹) 보'와 같은 뜻의 북쪽 말이다. 이 제목은 남북의 대립 현실을 은유한다.

293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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