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메디컬 드라마 '브레인'에서 신경외과 과장 '고재학'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이성민(43). 그는 경북 봉화군 산골 출신이다. 영주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대구 연극판에서 활동했다. 그는 춥고 배고픈 무명생활 20년 만에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TV 드라마에서 개성 있는 연기가 그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는 '브레인'에서 처세와 줄타기의 달인이자 병원 내 핵심 실세 역할인 '고재학' 역을 감칠맛 나게 소화해내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고재학'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드라마 캐릭터를 잘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재학은 드라마 속 주인공 이강훈(신하균 분)을 철저하게 짓밟고 주저앉히려 하면서, 병원 내 또 다른 실세인 김상철(정진영 분)과도 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악역에 가깝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배우 이성민은 어떤 인물일까? 기자가 느낀 첫인상은 고마운 인터뷰이(interiviewee'인터뷰 대상자)다. 그는 바쁜 촬영 일정 속에서도 20일 대전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인터뷰를 위해 대구까지 직접 차를 몰고 찾아왔다. 매일신문사 1층 카페와 인근 음식점에서 3시간 30분 동안 배우 이성민의 삶에 대해 묻고 들었다.
◆산골소년의 꿈, 봉화→영주→대구→서울
이성민은 봉화에서 태어나 도촌초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인근 영주로 유학해 대영중학교, 영광고를 다녔다. 이때까지는 그냥 평범한 시골청소년이었다. 하지만 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당시 영주시민회관에서 송승환 씨가 연출한 '일어나라! 알버트'(아프리카 흑인들의 이야기)라는 연극을 보고 연극의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공부를 그럭저럭 잘했던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입학원서를 들고 아버지에게 배우의 꿈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꿈은 무참히 짓밟혔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입학원서를 갈기갈기 찢었고, 차라리 재수해서 좋은 대학을 가라고 했다. 아버지의 말에 주춤했지만 그는 자신의 소중한 꿈을 접을 수 없었다.
운명은 그의 소중한 꿈에 입맞춤했다. 재수 시절 버스에서 내리는데 우연히 건물 벽에 붙은 '연극단원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스무 살 청년 이성민은 다음날 극단을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의 길로 뛰어들었다. 대학 진학의 꿈은 미련없이 접었다.
"딱 한 가지만 생각했어요. '배우가 돼야지. 연기를 해야지. 밥만 먹을 수 있다면 괜찮다. 돈은 없이 살아도 된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 오직 이것만이 제 삶의 전부였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른 거죠."
늦었지만 대학 진학도 했다. "뉴컴퍼니극단 이상원 대표의 추천으로 2002년 대구과학대 방송연예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영어로 All of my life! Thanks!"
◆연극배우로만 대구 10년과 서울 10년
스무 살 때 영주의 한 극단에서 초보 배우로 무대에 오르고 있던 시절, 대구에서 온 연출가 이강일 씨가 이성민을 눈여겨보고 함께 대구로 가서 연극을 하자고 권유했다. 그는 주저 없이 대구로 향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대구 연극판 생활 10년(군복무 시절 제외)은 배우 이성민을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마치 송강호나 김갑수 등이 서울 대학로 연극판에서 연기력을 다졌던 것처럼.
"대구에 있을 때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인 이홍기, 손성호, 이국희, 정철원, 이동수, 한기웅 씨 등은 지금 대구 연극판의 주축 배우나 스태프들입니다. 같은 또래여서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지만 대구에 자주 내려옵니다. 환경이 변했다고 갑자기 변하면 동료나 후배에게 미안하잖아요.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보냈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차를 몰고 전국 어디든 혼자 다니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그리고 가끔 톱스타급 배우들과 값비싼 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더라도 대구에서의 배우 시절을 떠올리며 호화로운 생활에 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에겐 월세 마련을 위해 포스터를 풀로 붙이던 시절이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제 전성기는 풀을 들고 다니며 포스터(1장당 150원)를 붙이면서 보냈던 시간이라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얘기했어요. 실제로 그랬습니다. 큰 풀통과 양쪽에 포스터 200장씩 넣고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포스터를 붙이고 나면 뿌듯했습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나 전주까지 원정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서울 연극판 생활도 그는 적극적으로 부딪쳤다. 겸손했지만 용감무쌍했다. '경쟁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도전했고, 성취감도 맛봤다. 그러다 보니 기회가 왔다. 2004년 MBC 베스트극장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 것이다. 이후 TV 드라마 출연이 잦아졌다. 물론 단역이었다. 2008년부터는 대접이 조금 달라졌다. '대왕세종'에서 최만리 역을 잘 소화해냈으며, 이후 '내 마음이 들리니' '파스타' '마이 프린세스' 등에 조연급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영화판에도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고 70' '체포왕' '해결사' 등에서 조연급 연기를 했다.
◆짧은 문답
-가족은?
▶2000년에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천생의 배필을 만났고요. 딸(11)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출연한 연극 중 세 편을 꼽으라면?
▶1998년 '비언소', 2001년 '돼지사냥', 2003년 '거기'. 비언소와 돼지사냥 때는 표준어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대구 관객들은 우리 사투리에 폭소하고 더욱 공감했습니다.
-수상경력은?
▶2001년 돼지사냥으로 전국 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큰 상도 있겠죠?(하하하)
-연기란? 또는 배우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연기를 20년 정도 해보니 이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하지 못하는 일들이 구분이 됩니다. 그래도 잘하는 일이 많은 배우가 되겠습니다.
-'브레인'에서 고재학 역할이 어렵지 않은지?
▶어렵습니다. 대통령, 검사 등의 역할을 해봤지만 의사는 처음입니다. 잘하기 위해 실제 병원 수술실 등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잘하기 위한 진통이라 여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장을 향합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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