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의 가시방석 자리,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자리?"

실키의 어느 하루/ 장호병 지음/ 북랜드 펴냄

실키의 어느 하루/ 장호병 지음/ 북랜드 펴냄

'생은 짧고, 수컷의 하루는 길다. 불꽃 같은 삶을 산 실키에게 오늘 하루는 가장 긴 날이었다.'

수필가 장호병의 세 번째 수필집 '실키의 어느 하루' 중 일부다. 수탉 실키는 암탉들이 알을 낳았을 때 즐거워했고, 마침내 병아리를 부화했을 때 어느 때보다 생기로 넘쳤다. 암탉과 병아리들을 먹이기 위해 방아깨비와 메뚜기를 잡았고, 부엽토를 파헤쳐 지렁이를 잡았다. 이웃집 진돗개가 닭들을 덮쳤을 때 그 개를 유인해 가족의 안전을 지켰다.

실키는 그날 이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개에게 죽임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녀석이 제 한 몸의 호사를 버리고 암탉과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양보하고, 몸을 희생한 것은 여느 반듯한 가장과 다르지 않다.

수필가 장호병은 흥미롭고 개별적인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인의 고뇌를 반추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시각의 변화를 유도한다. 이 책에 포함된 또 다른 작품 '덤'을 통해 그는 "명문대가의 자손으로 태어났거나, 많은 것을 가지고 만인이 우러러보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여 허세 부릴 일은 아니다. 지지리 궁상맞은 집에서 평생 동안 가난의 땟국을 떨치지 못하는 삶,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는 막장 인생을 산다 할지라도 한탄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이 자리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워 안달하는 덤이 아니던가"라고 말한다.

이 책은 수필작품과 수필로 쓰는 문학론 등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이번 수필집을 통해 독자들은 수필가 장호병의 세계관, 인생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각기 다른 글감, 다른 주제의 작품을 쓰고 있지만, 일관되게 '삶은 정답이 아니라 의미의 구축이며, 깨달음과 변화를 수반하는 실천자, 구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불행한 사람의 전유물로 여기기 쉬운 것이 눈물이지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 눈물을 나는 한때 아끼려고만 했다. 눈물로 치유되지 않을 슬픔은 없다. 고름 같은 눈물 한 바가지면 고치지 못할 병이 없다. 어떤 슬픔도 질병도 녹일 수 있는 것은 눈물 속에 담긴 진실 때문이다. (중략) 친구의 유골을 수습하여 납골당으로 향했다. 나의 눈물이 망자에게는 이승에서의 가장 큰 부조가 되리라. 애써 슬픔을 표시하고 싶었으나 담담하기만 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조화 항아리에 꽂힌 "엄마 사랑해요!"라는 어미 잃은 아이의 쪽지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눈물- 중에서.

꼭 그 자리, 그 시간에 울지 않아도 괜찮다. 가까운 친구와 사별할 때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어미 잃은 아이의 쪽지를 보며 쏟아졌으니 됐다. 그것으로 하늘로 떠난 친구는 충분히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장호병은 눈물의 격식이 아니라 눈물의 진정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눈물의 본래 가치이니 말이다.

장호병은 수필가이자 책을 만드는 출판인이며, 대학의 외래교수로 일인삼역을 한다. 그래서 몸은 쉬는 날이 없고, 까닭에 늘 몸살을 앓는다. 이쪽 일로 얻은 몸살은 저쪽 일로 치유하고, 저쪽 일로 얻은 피로는 이쪽 일로 푼다. 그는 "어느 하나가 주업을 자처할 때 나머지는 기꺼이 휴식이 되어 나를 새롭게 충전시킨다. 이 세 가지 일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하고, 살게 한다"고 말한다. 191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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