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강 2(오정국)

멀리, 더 멀리 가서 울고 오라고 했지만

강은 제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나도 길을 가야 한다고 타일렀지만

강은 우는 듯 웃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멱살잡이를 할 수도 없는 강, 산 계곡의 밤이

하릴없이 제 오줌 구멍을 들여다보는

밤, 그렇다면,

내 아이를 한번 낳아 주겠느냐고 했지만

강은 산 쪽으로 돌아누웠다 이런,

강물 따라 떠내려온 슬픈 이야기, 나도 강을 따라

멀리, 더 멀리 가서

울고 싶었던

누가 떠나가지 않고 제 자리에서 울고 있구나. 멀리 가라 가라 손을 저어보지만 움직이지도 않고 제 자리서 울고 있구나. 이젠 나도 떠나야 하는데 어쩔 거냐고 타일러도 그대로 있구나.

 어제가 크리스마스, 세모의 알싸한 기류와 함께 거리마다 네온장식이 금수강산이다. 대형빌딩들에 이불호청처럼 널려 눈부심을 자랑하던 조명들, 그 출렁임과 술렁임도 다 흘러가는 강물인 것을.

금호강이 밤마다 불빛을 거느리고 흘러도 강은 불빛과 혼례하지 않았다. 물의 표면만 번득이며 흐를 뿐 도무지 수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 아이를 낳아 주겠느냐 묻는 바람과 햇빛과 구름들을 고요히 말리며 돌아누울 뿐이었다. 왜냐고, 너무 가까우면 안 되니까. 너무 깊으면 더욱 안 되니까. 그러면 흘러가지 못하니까. 그걸 강은 알았던 것이다.

강물 쉼 없이 흘러가도 우리네 슬픔은 멀리 가지 못하고 늘 곁에서 보챈다. 이 시는 차마 들키기 싫어 멀리 가서 더 멀리 가서 울고 싶었지만 기어이 눈물 보이고 마는 우리들 이야기. 그렇게 강물 따라 떠내려 온 슬픈 이야기. 바로 그런 강의 이야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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