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티어링을 아십니까?
학창시절 소풍의 백미는 단연 보물찾기다. 거창한 보물이 아님에도 '꾸겨 접어놓은' 작은 종이쪽지 한 장을 찾기 위해 공원이나 산을 누빈다. 나무나 돌 밑에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종이쪽지를 찾아내면 진짜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그보다 더 짜릿하고 행복할 수 없다. 친구들보다 먼저 한 장이라도 더 찾기 위해 '죽을 똥 살 똥' 뛰어다닌다.
오리엔티어링은 한마디로 보물찾기의 확대판이다. 들판을 가로지르거나 숲 속을 헤치고 산등성이를 오르고 때로는 계곡도 건너면서 자연 속에서 미지의 특정 목표물을 찾아 달리는 '자연 친화적인' 스포츠다. 시작은 19세기 중엽 북유럽 제국의 군 장교 훈련 과목으로 시작됐지만 20세기 초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보물찾기와 달리 오리엔티어링에서 꼭 필요한 게 있다면 나침반과 지도다. 진로가 정해져 있지 않아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방향을 결정하고 주위 상황을 감안해 자기만의 루트를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머리도 써야 하고 순간적이고 정확한 판단력,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통찰력 등이 필요하다. 또 포인트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지도 지형의 색깔로 이동 경로를 결정하는 등 혼자 힘으로 자연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현대인들이 접하기 힘든 매력이다.
무엇보다 오리엔티어링의 최대 장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경기장으로 삼고 모든 지형상의 특징을 이용하면서 몸만 움직여 즐기는 종목으로, 도심에서도 할 수 있는 '친환경 녹색 스포츠'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남녀노소, 장애인 등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가족 단위나 단체에서 재밌게 놀면서 연대감을 높일 수 있는 레포츠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에 대학이나 청소년 단체, 기업 등에서는 수련이나 체험 활동, 연수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보통 도심에선 광활한 미지의 공간 대신 인근 산이나 공원에서 오리엔티어링을 즐긴다. 3~7㎞ 구간의 코스에 미리 정해놓은 8~20개 정도의 포인트를 차례로 찾아다니며 정확하고 빨리 컨트롤 마크를 찾아 펀칭을 찍어 순위를 가린다. 요즘은 전자 펀칭의 등장으로 참가자들의 위치와 정확한 컨트롤 마크 체크 여부 및 시간 등을 모두 실시간으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포인트 수와 총 코스 거리 및 난이도는 산, 공원 등 장소 특성과 그곳 지형의 난이도, 초보자 및 엘리트 등 경험 정도, 나이 등에 따라 달라진다.
오리엔티어링의 기본 종목은 도보, 스키, 산악자전거, 트레일 등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초보자, 남녀, 나이, 경험 등에 관계없이 두루 참가할 수 있는 도보 오리엔티어링이 가장 보편화된 종목이다. 스키 오리엔티어링은 설산에서 스키, 산악자전거 오리엔티어링은 산악지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포인트를 찾아다니는 종목이다. 트레일 오리엔티어링은 주로 공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경기하는, 장애인을 위한 종목이지만 초보자나 고령자 등 일반인도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어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경기 형식에 따라선 포인트, 라인, 스코어 오리엔티어링으로 나뉘는데 포인트가 가장 널리 실시되는 전통적인 형식이다. 포인트는 어느 길로 가든 정해진 지점에 설치된 컨트롤 마크를 순서대로 찾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찍으면 되는 방식으로, 컨트롤 마크를 하나라도 놓치거나 순서가 틀리면 실격이다. 경우에 따라선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서도 안 된다. 라인 방식은 반드시 지도에 나와 있는 라인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것이 포인트와 다르고, 스코어는 제한 시간 내 최대한 많은 점수를 획득한 선수나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스코어의 경우 어려운 포인트일수록 배점이 높아 작전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김진문 대구오리엔티어링연맹 전무이사는 "오리엔티어링은 개인, 2인, 가족 단위 등으로 참가 가능하고, 단체 경우 순서대로 배정된 포인트를 확인하며 이어가는 릴레이 종목에 출전하면 된다"며 "경기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주최 측에서 한 포인트에 여러 개의 가짜 컨트롤 마크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어 지도를 정확하게 읽어야만 진짜 마커를 찍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간 전국적으로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 주최의 선수권대회를 비롯해 지역별 연맹 회장배 등 40회 안팎의 대회가 열리는데, 동절기 몇 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주 대회가 마련된다. 이미 대회를 치른 산이나 공원에서 다시 대회가 열리는 경우도 적잖지만 대회 때마다 새로운 루트를 개발, 지도를 만들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이처럼 한 번 사용한 지도는 다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회 때마다 지도 제작 비용이 만만찮다. 새로운 루트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선 제작 기간이 1년 정도 걸리고 특수 종이 및 잉크를 사용해 지도를 만들기 때문에 지도 장당 제작비가 3천~4천원이나 된다.
대구에서도 이달 4일 두류공원에서 국내 최고 권위 대회인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 주최의 제16회 한국오리엔티어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대구오리엔티어링연맹은 2009년 6월 만들어졌다. 대구연맹은 내년부터 자체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대구엔 오리엔티어링 상급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회원이 100여 명 되지만 개인이든, 가족이든 단체든 누구나 대회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회원 개념은 없다.
박재철 대구오리엔티어링연맹 회장은 "내년에 상급지도자 교육을 4회 실시해 지역 오리엔티어링 저변을 넓히고 4, 5월쯤 제1회 대구연맹 회장배 트레일 오리엔티어링 대회를 대구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하반기 대회는 내년에 대구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 때 오리엔티어링 종목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치르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는 상'하반기 한 번씩 연간 두 차례 정도 대회를 지역에서 개최할 예정이고, 대구시체육회 가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은 1977년 발족했고, 오리엔티어링이 올해 처음으로 전국체육대회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은 올해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 스키 오리엔티어링 종목에선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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