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빠지고/김새는/딱한 말이/잊힐 만하면/배달된다./……최선을 다하겠다./……최선을 다하겠다./인생은 악만 탐구해도/늘 모자라거늘,/말끝마다/……최선을 다하겠다./……최선을 다하겠다./뭐, 이런/불가사理가 다 있나?/언제부터/최선…최선인데…/아직도 그리 많은/최선이 남았는가./지루하고/멸렬한/긍휼한 긍지가/잊혔다 하면/배급된다.
박용하 시인의 시 '……최악을 다 하겠다'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마이크를 갖다 대기만 하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앵무새처럼 재잘거리는 데 대해 심기가 매우 불편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최선, 최선 해왔는데 아직도 다해야 할 최선이 남았는가라고 청양 고추 씹은 소리를 냅니다.
사실 그렇지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덮어놓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합니다. 세상의 가훈, 교훈, 원훈, 사훈…등등 훈(訓)자 돌림의 말씀을 담은 온갖 액자나 족자들을 봐도 눈에 자주 띄는 게 '최선을 다 하자'입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야지요. 사람으로 태어나 단순히 동물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적 실존의 차원에서 사람답게 살아가자면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별 도리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최선을 다해 행하려는 일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최선만을 다할 때, 그 최선은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이 세상을 거꾸로 돌리는 최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판단의 근거가 매우 빈약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은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쓴 책 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저자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아이히만이 어째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희대의 범죄자 아이히만이라는 인간은, 누가 봐도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일 것이며 영혼 자체가 악의로 가득 찬 괴물로서 일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이상인격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그의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본 아렌트는, 그가 자신의 개인적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 성실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범죄 동기도 갖고 있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에 최선을 다했던 그가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로 전락한 근본 원인은 철저한 무사유(無思惟), 즉 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관점의 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지금도 최선을 다해 최악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가는 풍경들이 더러 눈에 띕니다. 중요한 나라일을 앞에 두고도 당리당략만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여의도 나리들의 완력이 수상하고, 사회 발전을 위한 근원적이며 공적인 질문은 내팽개치고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만을 위해 기득권을 휘두르는 지식인들이 미심쩍고, 자식 사랑인지 자기 사랑인지 도대체 분별이 어려운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 과열증도 의심이 가고, 교문에는 '창의적인 자기 주도적 학습자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를 현수막으로 내걸고서 실제 교실에서는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해 주입식'문제 풀이식 교육을 서슴없이 행하는 학교도 이상하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 무엇이라도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부모의 기대에 떠밀려 학원가를 바쁘게 흘러다니는 학생들의 공부 방법이 답답하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답답한 것은 고정관념과 편견과 습관들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일상의 맥 빠진 표정들과 마주하는 일이지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이상의 중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유의 정지 현상은 내구성이 강해 우리네 삶을 따라다니며 실패의 위기로 몰아간다고 합니다. 더욱이나 요즘은 사람이 하는 일이 극도로 세세하게 갈라져 있어, 마치 여름 한 철밖에 살지 못해 겨울의 눈 내리는 풍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메뚜기처럼, 너나없이 자기 영역 밖을 바라보는 안목이 콧구멍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일에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소가 섞여 있지나 않은지 늘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더욱 진지하게 성찰해 볼 일입니다.
생각이 가난한 우리네 삶을 질타하듯 매서운 한파가 채찍을 휘두르는 연말입니다. 이 세월의 가파른 고갯마루에서 소크라테스가 유언처럼 남겼다는 말을 꺼내봅니다. "아테네인들이여, 이 말만은 기억하라.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김동국/시인·대구두산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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