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B군은 요즘 학교에 가기가 싫다. 1년 전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 C군이 요즘에는 더 심하게 괴롭혀서다. C군은 B군이 필기를 하고 있으면 팔꿈치로 손등을 내려찍고, 급식소에서 줄을 설 때 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선생님이 보지 않을 때만 교묘하게 자신을 괴롭힌다.
선생님께 말할까 했지만 학급 반장인 C군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선생님이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B군은 "그 녀석이 나를 때리는 것은 단지 '꼴보기 싫다'는 이유 하나다. 빨리 3학년이 돼서 C군과 다른 반이 됐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A(13) 군을 괴롭힌 가해학생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 아이들은 겉보기엔 평범한 학생들로 담임 선생님도 괴롭힘을 알아채지 못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두 학생은 반 성적은 35명 중 중간 정도로 평범했고 말썽을 피워 교사에게 혼난 적도 없다. 학내폭력조직인 이른바'일진'에 소속되지 않은 아이들이 친구를 죽음에 내몰 정도로 잔인하게 괴롭힌 것이다. 가해학생 부모들도 "우리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첫 반응을 보였다.
A군 사건은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요즘 학교 폭력은 예전에 가정 형편이 좋지 않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이 집단적으로 학교 폭력을 저질렀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라며 과거보다 학교와 가정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학교 '문제아'가 아닌 같은 반 친구들이 서너 명이 사소한 문제로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예비 중학생 김모(12) 양은 "몇 달 전 같이 놀던 친구가 얼마 전에 울었는데 그때 내가 달래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뒤에서 몰래 머리를 때리는데 빨리 중학생이 돼서 이 친구들 얼굴을 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대체로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이 학교 폭력의 근본 원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많다.
학교폭력예방센터 김건찬 사무총장은 "최근 학교 폭력 가해자들을 보면 학급 반장부터 전교 꼴등까지 매우 다양하다. 폭력 조직에 속한 학생들이 피해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과 다른 양상"이라며"과거보다 폭력적인 게임과 세상 문화에 많이 노출된 청소년들이 폭력 자체에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동생을 괴롭히는 행동을 보이면 학교 폭력 피해자로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가족보다 친구 관계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아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명대 최윤경 교수(심리학과)는 "최근 맞벌이 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부모들이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며 "내 아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함께 여행을 자주 가거나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 자녀의 고민이 뭔지 부모가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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