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어둠

웬일로 밤늦게 찾아온 친구를 배웅하고 불 끄고 자리에 누우니 비로소 스며든다 반투명 셀로판지 같은 귀 엷은 소리, 갸녈갸녈 건너오는 날개 비비는 소리, 달빛도 물너울로 밀려든다

아하, 들어올 수 없었구나!

전등 불빛 너무 환해서 들어올 수 없었구나 어둠은, 절절 끓는 난방이 낯설어서 발붙일 수 없었구나 추위는,

얼마나 망설이다 그냥 돌아갔을까

은결든 마음 풀어보지도 못하고 갔구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내 이야기에 멍만 안고 돌아갔겠구나

장옥관

밤늦게 찾아온 친구의 말은 듣지도 않고 제 이야기만 쏟아놓은 낭패감이 친구 돌아간 뒤에 스멀스멀 기어드는 때처럼, 1년 간 제가 쏟아놓은 이야기들이 민망하고 놓쳤을 지도 모르는 행간들이 안타깝습니다. 이쪽 불빛 너무 환해서 보지 못한 어둠 있거나 혹은 환부는 짚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침을 놓았더라도 너그러이 보아 주십시오.

제가 찾아놓은 목록들, 빛나는 시들이 아직 남아있는데, 시간이 다해 문을 닫아야 하는 심정 연말의 아쉬움에 함께 휩싸입니다. 다른 기회가 온다면 문밖에서 추위에 떤 시들을 안으로 들일 것입니다. 100여 편 넘는 시들을 만나면서 함께 아프고 함께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동행해 주신 따뜻한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뚫어지게 바라보면 어둠에도 밝음이 있지요. 그러므로 현실이 아파도 어둠을 이해하는 새해, 어둠을 공유하는 새해, 어둠마저 아무것도 아닌 새해이길 빕니다. "은자는 사막으로, 물고기는 물로, 독자는 책으로, 어둠은 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글이 있지요. 오늘로써 작별인사를 올리며 저도 다시 먼 시간 속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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