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평론을 위해서는 먼저 해당 작품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작품분석을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제작환경을 이해하고 희곡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연출을 이해하고 연극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도 이해해야 한다. 그 후에야 구체적인 장단점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더 이해해야 할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이미 '연극의 과학' 편에서 말한 무대의 각종 기술 혹은 과학으로, 무대장치, 조명, 음향, 분장, 의상, 특효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현대 연극에서 무대 위의 과학인 각종 무대기술을 빼고 연극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무대기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위에 실제와 닮은 집을 짓는 무대장치나 낮과 밤을 표현하기 위한 단순한 조명, 등장인물의 나이를 표현하기 위한 단순한 분장 등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와이어 액션, 눈앞에서 펼쳐지는 총격장면, 상상을 초월하는 최첨단 영상의 활용으로 기차나 헬기가 무대 위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제껏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거의 모두 눈앞에서 직접 펼쳐질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관객은 작품 그 자체보다는 화려한 각종 무대기술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기도 한다.
특히 그런 경향은 많은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현대의 유명 뮤지컬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마다할 관객은 없다. 작품의 내용이나 배우의 연기 등을 빼더라도 경이로운 무대장치, 눈부시게 화려한 조명, 믿어지지 않는 분장, 상상 이상으로 다채로운 의상,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막힌 특수효과 등 그야말로 다양한 볼거리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관객의 감성과 이성마저 흔들리게 한다. 당연히 무대기술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연극의 부수적인 요소였던 각종 무대기술이 이제는 연극에서 주도적인 위치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무대기술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극제작비에서 무대기술이 차지하는 비용 또한 높아졌다. 즉 제작환경에 따라 무대기술의 활용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객이 뒤바뀐 측면도 있다. 무대기술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가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오히려 악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제작비 문제로 인해 쓰고 싶은 무대기술을 다 선보이지 못하고 최소한의 무대기술만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연극평론을 위해 작품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맨 처음에 '제작환경'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모두가 대작을 만들 수도 없고 모든 작품이 대작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무대기술의 적절한 활용이다. 제작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없어서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표현하고 싶은 무대기술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제작비 문제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야 한다. 똑같은 식재료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요리사마다 다르듯이 연출가와 무대 스태프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무대기술도 다를 뿐만 아니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무대기술이 무조건 좋다고 볼 것이 아니라 제한된 여건에서 얼마나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소극장 무대에서 대극장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기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어진 여건 안에서 적절히 사용해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가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무대장치가 없어도, 화려한 조명을 사용하지 않아도, 별다른 음향이 없어도, 분장이나 의상조차 별 게 없어도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연극의 모든 요소들이 그렇듯이 무대기술 또한 작품과 분리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있을 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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