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꿈을 갖고 생겨나지만 상당수는 좌절 속에 사라진다. 기업의 성장에는 창업자의 눈물과 시련, 그리고 운명을 함께한 직원들의 노력이 녹아있다. 매일신문은 '유망 중소기업'의 성장과 성공 스토리를 연재한다.
'초교 학력 미용사가 120명 직원에 연매출 100억원의 벤처 사장으로.'
게임 개발업체인 ㈜라온엔터테인먼트 박재숙 대표(49). 그의 이력은 잘나가는 벤처 기업 대표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생뚱맞다.
흔히 벤처 기업 대표는 대기업 연구소 출신이거나 유학파, 또는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한 이들. 박 대표는 미용실을 운영하다 우연하게 생소한 게임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녀의 회사가 만들어낸 온라인 레이싱 게임인 '테일즈런너' 누적 회원 수는 국내 1천만 명, 해외는 1천500만 명에 이른다.
라온의 성장은 '행운'과는 거리가 멀다. 죽을 힘을 다해 기업을 키웠고 수많은 고비를 직원들과 함께 넘기며 현재까지 왔다. 그녀가 들려주는 '라온의 꿈과 희망'을 들어보자.
◆미용사, CEO가 되다.
박 대표는 라온엔터테인먼트를 맡기 전까지 경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8년간 미용실을 운영했고 미용실 학원 강사로 2년 동안 일했다. 학력도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이런 그가 게임 업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은 동생의 PC방을 맡아 운영하면서다.
박 대표는 "동생 부부가 운영하던 PC방을 내가 맡았고 마침 동생이 만든 화상채팅 사이트가 인기를 누리면서 다른 PC방에 동생 사이트를 홍보하는 등 여기저기로 발을 넓히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박 대표가 라온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것은 2002년 동생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기업을 맡아보라'는 한마디 때문이다.
"제가 1, 2년만 운영해 보고 정 안되면 동생이 회사를 관리하려는 생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끝까지 지켜낸 거죠."
2002년 5월 박재숙 대표가 라온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경영자로 발을 내디디면서 지역의 게임 산업이 새로운 인물을 맞이했다. 하지만 라온엔터테인먼트와 박 대표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월급도 못 주던 악덕 경영자
라온엔터테인먼트 인수 이후 박 대표는 동생의 도움으로 1년간 겨우겨우 운영해왔다. 하지만 동생의 도움이 없어지면서 회사는 적자에 허덕이게 됐다. 박 대표는 "이때부터 회사가 너무 힘들어지면서 직원들 월급을 6개월간 못 줬다"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회사를 개선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꿈'과 '희망'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회사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용기 있는 자는 라온이라는 배에서 내려주시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이곳에 남아주십시오."
박 대표는 이 말과 함께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이 환경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내 환경에 의해서 받아들일 수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 자와 이 환경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들은 용기 있게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며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 중에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아서 회사와 함께하자고 말을 꺼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라온의 배에서 내린 이는 18명의 직원 중 단 두 명뿐이었다. 이후 라온엔터테인먼트는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월급으로 100만원을 받았다. 박 대표는 "월급을 삭감하면서 나는 직원들에게 나중에 회사가 잘됐을 때 지금 삭감된 부분에 대해 한꺼번에 다 갚겠다고 약속했다"며 "1년 8개월 뒤 테일즈런너가 세상에 나오면서 100만원 월급을 탈출했고 직원들과의 약속도 지켰다"고 웃음을 보였다.
◆테일즈런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테일즈런너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역경이 있었다. 박 대표는 게임 기획팀장이 출근을 하지 않았던 사건을 언급했다. "팀장이 연락도 없이 출근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아서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다"며 "다음날 아침에 왜 출근을 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이 아침에 차를 탔는데 버스비 낼 돈도 없어서 너무 속이 상해서 집에서 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직원의 말을 듣고 박 대표가 꺼낸 말은 '돈이 없으면 퇴근을 하지 말았어야지'였다. 그는 "팀장의 말에 미안했고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따끔하게 혼내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며 "팀장은 내가 더 역정을 내니 정신을 차리고 더욱 열심히 일을 했고 회사에도 이 일화가 퍼지면서 '퇴근하지 말았어야지'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웃었다.
테일즈런너 개발이 끝난 뒤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마땅한 퍼블리싱 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 박 대표는 "지역의 게임 업체가 만든 처녀작에 투자할 업체는 별로 없었다"며 "다행히 나우콤을 만나 퍼블리싱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나우콤에서 게임을 가지고 자신들 밑으로 오라고 제안했지만 직원들이 끝까지 안 된다고 버텼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제 차를 바꿔줘야 해서 라온엔터테인먼트의 게임이어야 한다고 그랬다더라고요."
박 대표는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친 적이 있고 이후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박 대표는 "나우콤 사장이 나를 보면서 '대박을 내서 사장 차 사주겠다는 직원이 있는 회사는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것이라 믿어서 투자했다'고 설명해줬다"고 털어놨다. 2005년 8월 테일즈런너가 등장하면서 회사의 먹구름은 서서히 사라졌다.
◆희망을 말하다.
꿈과 희망으로 회사를 운영한 박 대표는 2012년에도 끝까지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감성경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회사가 끊임없이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직원을 생각하고 챙기는 것이 회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회사의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변한 것처럼 직원들에 대한 대우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들은 대부분이 처녀 총각이어서 한 달에 100만원을 받으면서도 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집안의 가장인 이들이 많다"며 "이들에게 내가 예전과 똑같은 월급과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은 경영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자신의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을 제공하지 못하는 회사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예전보다 회사의 상황이 나아졌지만 직원이 늘면서 책임져야 할 이들이 많아졌고 경영의 리스크도 커졌다"며 "하지만 직원들의 지식과 똑똑함, 그리고 나의 지혜가 합쳐지면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미소를 지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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