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언제나 마음은 태양

그래, 혼자 있지 못해서 몸살을 앓고, 혼자인 게 무서워서 몸서리치고 있었구나. 불쑥불쑥 쳐들어오는 어른들의 무모함에 숨 막혀 하다가, 숨 가쁘게 찾을 때 정작 등 돌려버리는 무심함에 절망하는 너희들의 눈물을 미처 보지 못했구나. 지레 콧방귀 뀌고 딴청을 부린 것도 어쩜, 어른들에게 먼저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서였니? 무심코 깨뜨린 접시 앞에서, "어떻게 된 거야?"라고 다가오는 말 한마디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혀를 차며 멀어져 가는 싸늘한 침묵에 아팠고, 무척 화도 났겠구나. 자신도 한 번쯤은 지나쳐 왔을 순간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늘어가는 건망증만큼 지레짐작과 우격다짐으로 메우려는 일방적인 사랑 타령 앞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실은 어른들도 쩔쩔매고 있단다. 따뜻한 관심과 따가운 간섭의 사이, 무한한 믿음과 무작정 방관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말이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 1967)은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의 현대판 성장담이다. 누구 하나 챙겨주는 이 없는 천덕꾸러기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런던 빈민가의 어느 고교 졸업반 교실. 괜한 희망이라도 품었다가 실망하고 결국에는 절망에 허우적거릴까 봐, 애당초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닫은 아이들. 한 번쯤 던져주는 다정한 눈짓에 혹시나 싶었다가 역시나 상처만 입을까 봐, 지레 으르렁거리고 비아냥거리는 눈빛들. "언제까지 철부지로 살아갈 거야?" 불호령으로 몰아붙이기보다 우선 깍듯한 경칭으로 한 명씩 한 명씩 이름을 불러준다. 일방적으로 꽉 짜인 교과서는 한쪽으로 밀쳐두고서, 도대체 무엇이 궁금하고 알고 싶은지를 서로 묻고 서로 답한다. 말썽 피우지 말라며 교실 안에다 잡아두지 않고, 함께 바깥으로 나가 눈높이를 맞추어 시시덕대고 깔깔거린다. 그리고는 일러준다. 학교 담장 밖 세상살이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들은 또 얼마만큼 치열한지를.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헤쳐가고 일구어가야만 한다고. 졸업식 댄스파티의 자리, 소중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음을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든든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더운 눈물을 나눈다.

독 안에 든 쥐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한 줌 남은 틈마저 막혀버린다면 마침내 제풀에 죽어갈 것이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바람이나 믿음도 한순간이라도 맛보았던 햇살에 대한 따스한 기억이 있고서야 비로소 꿈꾸어볼 수 있다. 실낱같은 햇살에 목이 타들어가던 꽃망울들이 채 피어보기도 전에 우수수 스러진 밤이 밝아오고 있다. 다시 칠흑같이 어두운 길이 이어지더라도,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도록 손을 잡고 함께 헤쳐가야겠다. 새 아침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