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시라는 덫(천양희)

쓸쓸한 영혼이나 편들까 하고

슬슬 쓰기 시작한 그날부터

왜 쓰는지를 안다는 말 생각할 때마다

세상은

아무나 잘 쓸 수 없는 원고지 같아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

쓴다는 건

사는 것의 지독한 반복학습이지

치열하게 산 자는

잘 쓰인 한 페이지를 갖고 있지

말도 마라

누가 벌 받으러

덫으로 들어갔겠나 그곳에서 나왔겠나

지금 네 가망은

죽었다 깨어나도 넌 시밖에 몰라

그 한마디 듣는 것

이제야 알겠지

나의 고독이 왜

아무 거리낌 없이 너의 고독을 알아보는지

왜 몸이 영혼의 맨 처음 학생인지

시만을 바라보며 고군분투하는 전업시인 천양희 시인의 곧은 성격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시를 덫이라 부르네요. 그러나 스스로 걸어 들어간 덫이니 얼마나 행복한 덫인지요. 이 덫을 향해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 삶보다 치열한 삶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런 치열한 삶은 고독할 수밖에요. 그래서 치열하게 사는 당신의 고독도 알아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고독을 거친 영혼이어야 이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여 비로소 학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몸'이라는 가끔씩 제멋대로인 골치 아픈 학생 말입니다.

여러분도 덫에 걸려 보시는 게 어떨까요. 무미건조한 일상의 발등을 '철컥' 하고 내리쳐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행복한 시의 덫 말입니다. 최근 문학잡지에 실린 따끈따끈한 덫을 일주일에 몇 개씩 갖다 놓을 테니 주저 말고 '철컥' 밟아주시기 바랍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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