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살이 깔깔거리고 있는 거실 벽면에 새 달력을 건다. 오랫동안 절제하며 기다렸던 흑룡이 숫자들 속에서 살아 꿈틀거린다. 2012년 임진년,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흑룡의 해이다. 60년 동안 승천의 날을 기다린 흑룡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 우울하게 고장 났던 마음에도 희망의 새살이 돋으며 다시 시작하는 활기찬 새해 새 아침이다.
우리가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될 때, 그 사람의 가장 첫 모습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다. 살며시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문을 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손으로 아무렇게나 열고 소란스럽게 걸어오는 사람 등,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에 따라 들어오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문의 종류에 따라 열고 닫는 방법은 다르지만 문을 출입하는 그 사람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찾아온 새해의 첫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무작정 첫 문을 여는 막연함보다는 구체적이며 실천 가능성 있는 소박한 결심이 새해를 보람 있는 해로 만들어 가는데 더 지혜로울 것이다.
해마다 새해를 선물로 받을 때면 "인생을 재는 법은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사랑에 있다"는 존 부로우즈의 말이 생각난다. 흑룡의 해를 시작하는 새해 아침에도 그의 말은 어김없이 햇살을 타고 나를 찾아온다. 참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다는 말을 연발하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을 적당하게 혹은 부분적으로가 아닌, 최선이라는 것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병아리의 여린 부리는 알 속에서, 어미 닭의 부리는 알껍데기에서 일점을 향해 수없이 쪼아 마침내 껍질이 깨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줄탁동시'의 교훈을 떠올려본다. 세상 모든 것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실하고 간절하게 노력한 끝에 만들어지는 것임을, 그리고 좋은 세상은 병아리처럼 최선의 삶을 살고 어미 닭처럼 헌신하는 삶을 살 때에 만들어지는 것임을 새해 아침에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언제 막이 내릴지도 모르는 인생 무대에서 타인의 배역을 부러워하며 두리번거리는 어리석음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각본에 최선을 다하며 기쁨의 설계자가 되어보자. 그렇게 하여 "아침에 일어나자 나는 내 정원의 꽃이 기적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보았어요"라는 '기탄잘리'를 쓴 타고르처럼 우리도 새해 아침에 한 해의 기적을 꿈꾸어보자. 그리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꼬리말을 달아보자. "그래, 좋아. 그건 가능한 일이고 난 할 수 있어"라고.
새 달력 속, 승천을 꿈꾸는 흑룡의 꿈틀거림이 사뭇 진지하다.
황 인 숙 시인'시낭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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