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일 30일 전에 본회의에서 확정돼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또 2011년 12월 31일 자정까지 꽉 채웠다. 국회 사무처 직원, 의원 보좌진, 정부 부처 공무원 등 예산안과 관계된 모든 이가 국회에서 새해를 맞이한 셈이다. 한 보좌관은 "올해도 집이 아닌 국회 안에서 새해를 맞고 있다. 일년 내내 땡땡이치다 마지막 날 왜 직원들을 벌세우고 있는지…"라며 혀를 찼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3년부터 2011년 이명박 정부까지 예산안이 의결된 현황을 보면 1989년 노태우 정부 2년차 때 처음으로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들어 5번의 예산안 의결 중 3번은 법정기한을 지켰다. 이후 나머지 정부에서는 대선 정국을 빼면 한 번도 기한을 지키지 않았고, 노무현 정부 때는 특히 심해 대부분 12월 27~31일 사이에 처리됐다. 여대야소든, 여소야대든 관계없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국민 앞에서는 싸웠지만 잇속은 제대로 그리고 모조리 챙기고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국회 법제사법위는 12월 31일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대치할 때 이를 틈타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요건을 완화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인 일명 '청목회법'을 기습 통과시켰다. '누구든지 국내외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는 조항에서 '단체와 관련된 자금'을 '단체의 자금'으로 변경하면서 정치자금이 '단체의 자금'으로 명확하게 확인될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정 기업이나 단체 등 이해관계가 명백한 집단이 직원이나 관계자들을 시켜 정치자금을 기부해도 '단체의 자금'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사실상 돈 많고 힘있는 집단의 '로비 합법화'를 묵인한 것이다. 결국 '구린' 돈의 정치권 유입을 정당화시킨 것이기도 하다.
또 18대 국회 마지막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에 입성하기 위해 로비가 치열했던 이유도 드러났다. 4월 총선을 겨냥한 예결특위 위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챙기기에 혈안이 되면서 도로, 지하철 등 사회기반시설(SOC) 사업 예산이 오히려 증액됐다. 계수조정소위에 들어가지 못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차별받은 셈이다.
최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국가정보원의 내년 예산은 7천억원 규모의 예산 가운데 75억원 정도를 깎는 선에서 심사를 끝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