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말한다. 조금은 가난하고 불편하게, 그러나 좀 더 행복하게 살라고. 소유욕과 탐욕을 멀리해야 한다고 읊조린다. 또 누구는 2천300년 전 장자의 말을 가져와 '메추라기가 산속에 둥지를 틀어도 가지 하나에 불과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탐해도 배밖에 못 채운다'며 불필요한 욕심을 갖지 말라고 낭랑하게 말해준다. 어느 시인은 또 말한다. '행복이란 불행과 대비되는 마음이 아니라, 불행까지도 포함하는 더 넓은 마음 상태'라고. 조금 어렵지만 그럴 것도 같다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긍정심리학' 강의로 유명한 하버드대 탈 벤-샤하르는 행복을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했다. 불행한 사람의 유형을 3가지로 나눴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당잡힌 '성취주의자', 순간의 즐거움만을 좇다 무료함의 늪에 빠진 '쾌락주의자', 과거의 실패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 행복을 포기한 '허무주의자'다. 그러면서 이렇게 귀띔한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투자은행가는 어쩌다가 실수로 수도승이 된 사람보다 더 영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어떤 이는 웃음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했고, 어떤 시인은 '단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부모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죄수보다 더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는 카펫 공장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을 일깨워준다.
일본의 한 소설가는 자신을 사랑하는 삶에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한 휴머니스트는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이 행복이라고 말해준다. 한 정신과 교수는 행복의 출발점은 인간적 친밀함에 있다며 증거를 들이민다.
이 밖에도 많은 행복 비결이 있다. '사소한 것을 버려야 행복해진다' '무언가에 몰입할 때 미치도록 행복하다' '이미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경쟁을 벗어나 함께 어울릴 때 행복하다' '행복 호르몬을 알면 행복의 길이 열린다'.
지금까지 쓴 것보다 100배쯤 더 많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을 열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것 때문에 좀이 쑤셔서 더 이상 나열할 수가 없다. 정말 이렇게 책을 읽고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왜 '행복' 교과서는 없는 걸까? 헌법에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해놓고는 왜 정규 교과 과목에 '행복'을 넣지 않는가?
앞서 나열한 조건들이 틀린 것일까? 영어 단어 2만2천 개쯤은 줄줄 꿰고, 미적분이나 삼각함수를 척척 풀어내며,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글을 주고는 '글쓴이의 의도'를 묻는 질문에 출제자와 똑같은 답을 하면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똑똑한 분(아마 앞서 방법들을 통해 무척이나 행복해진 분들일 터)들이 국민들을 이토록 괴롭힐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라일 정하는 분들이 행복의 비결을 그토록 피 터지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밤잠 안 자고 노력하면 된다지 않는가. 참, 빠뜨린 게 있다. 그냥 노력만 해선 안된다. 남보다 더 잘해야 된다.
행복해지는 비결이랍시고 서점에 나와 있는 모든 책들은 전부 수거해 불태워야 한다. '국'영'수'라는 행복 지름길 전도서가 엄연히 있다. 나머지는 모두 불온서적이다. 혹시 어려워할까 봐 보충수업에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시켜서 행복의 길로 인도해준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는가? 국가가 이쯤 하면 그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국민들은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쯤 하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른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학교 폭력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경쟁을 숭배하는 교육제도'임을 깨닫게 될까. 연봉 1억원을 받고 고급 승용차를 타며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언제까지 속일 텐가? 새해에는 부디 1%씩만 나아졌으면 좋겠다. 100년 뒤엔 이런 거짓부렁이 사라지도록.
김수용/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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