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리랑'과 식민지근대화론 논쟁 재점화
2007년 여름 역사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번에 포문을 연 것은 허수열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허 교수는 신간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한길사)을 통해 일제에 의한 근대화를 인정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적인 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교수는 앞서 2007년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서 소설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당시 이 교수는 소설의 주무대인 김제만경평야가 오늘날처럼 광활하고 비옥한 평야지대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들과 수리조합의 개간 사업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수리시설이 전혀 없는 갈대 무성한 황무지였을 뿐이었고 이곳이 곡창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었다.
당시 조정래 작가는 "백과사전과 교과서에 대규모 저수지(수리시설)였던 벽골제가 1천500여 년 전에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며 이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이 교수의 주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허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농업개발론을 비판한다'라는 부제가 붙은 신간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에서 "1910년 무렵 전라북도 농업에 관한 비판은 대부분 부정확한 사실인식에 입각해 있거나 혹은 자의적인 해석으로 가득 차 있어 사실인식에 엄청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제만경평야 일원의 벽골제가 바닷물의 침입을 막는 방조제였다는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허 교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을 언급하면서 "이 기록에서 이미 벽골제가 엄청나게 큰 규모의 저수지였다는 점이 명백해졌다"면서 벽골제는 방조제가 아니라 저수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벽골제가 저수지로서 기능을 제대로 한 것은 지난 1천700년 중 극히 일부 기간에 불과했던 것 같으며 대부분의 기간에 벽골제는 제방의 일부가 파괴된 상태로 내려왔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벽골제가 방조제면 그 둑 아래 지역(김제만경평야 대부분)은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갯벌이 되어버리고, 벽골제가 저수지의 둑이라면 그 둑 아래 지역은 벽골제로부터 관개 받는 비옥한 경지가 된다.
허 교수는 1909년부터 공표되기 시작한 조선총독부의 농업통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 당시는 아직 통계조사를 위한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고 따라서 통계가 부정확하고 불충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제 초의 김제만경평야는 조정래가 생각한 것처럼 풍요로운 평야지대는 아니었다"고 결론 내리면서 이처럼 생산성이 높은 지역은 아니었지만 이 지역을 사실상 불모의 땅(갯논이나 갯벌)으로 간주한 이 교수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논쟁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고 일축하면서 "아직 허 교수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현장에 가 보면 (벽골제가 방조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