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가정폭력·위암에 고통받는 김인수 씨

고난의 결혼생활… 암 판정 "행복은 어디 있나요"

김인수(가명
김인수(가명'50'여) 씨는 지난 20년을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난다. 그의 과거에서 '행복'이란 단어는 없다. 폭력으로 얼룩진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김 씨는 최근 위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김인수(가명'50'여) 씨는 지난해 이름을 바꿨다. 누군가 자신의 옛 이름을 부를 때마다 과거의 악몽이 필름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언니, 내 이름을 없애고 싶을 만큼 내 지난 20년 기억을 지우고 싶었어요." '남편'이라는 말도 김 씨가 옛 이름과 함께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매일같이 폭력을 휘둘렀던 전 남편 때문에 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어 어렵게 이혼했지만 그를 찾아온 것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암'이었다.

◆지우고 싶은 20년

김 씨의 가슴속은 응어리진 상처로 가득 차 있다. 1988년 당시 한국은 서울 올림픽 열기로 축제 분위기였지만 그의 인생에는 불행이 시작됐다. 그해 열린 결혼식 날 연회장에서부터 남편에게 맞았다. "제가 아는 노래가 없어서 '일송정 푸른솔은'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선구자 노래를 불렀어요. 남편은 결혼식과 안 맞는 노래를 부른다며 배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결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울산의 공장에 취업했던 남편은 8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뒀고 김 씨를 데리고 고향 영천으로 내려갔다. 시부모와 함께 살아도 남편은 계속 김 씨를 때렸다. "잠깐 동네 마실을 가거나 남편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있으면 나를 찾아와서 마구 때렸어요. 하도 많이 맞아서 갈비뼈가 부서진 적도 있었지만 제 편은 아무도 없었어요."

이런 그에게 남편의 폭력보다 더 가혹한 아픔이 찾아왔다. 큰아들 민수(가명)가 6살 되던 겨울날이었다. 김 씨는 민수보다 두 살 어렸던 둘째 민철이(가명'24)만 데리고 바람을 쐬러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 "민수가 '엄마, 나도 같이 갈래. 엄마 나도 데려가'라고 칭얼댔지만 두 녀석을 데려가면 내 몸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민수는 집에 두고 나왔어요." 3시간 뒤 김 씨가 집에 돌아왔을 때 민수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동네 여자들이 그를 찾아와 사라진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민수 엄마! 큰일났어! 민수가… 민수가… 죽었어."

◆큰아들을 가슴에 묻다

큰아들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민수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동네 사람들은 "혼자 개울가에서 나무 막대기를 주우려고 하다가 물에 빠졌다"고 전했다. 차가운 물에 빠진 민수는 심장마비로 숨졌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뒤 김 씨는 온전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리운 아들은 환영이 돼 밤마다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랑 같이 놀러 가자. 엄마, 엄마." 아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면 김 씨는 저수지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 때문에 1년 넘게 몽유병에 시달렸다.

민수가 죽은 뒤 남편은 더 심하게 아내를 때렸다. 허리띠, 물에 적신 손수건 등으로 아무 말 없이 그를 때리고 잠이 들 땐 항상 그를 품어줬다. 민철이와 민규(가명'17)는 아빠가 때리는 모습을 봐도 쉽게 말리지 못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 김 씨는 이혼소송을 준비했다. 부러진 갈비뼈, 온몸에 난 상처를 근거로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고 가정 폭력의 증거를 모아 가정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에서 남편은 "다시는 너를 때리지 않겠다"며 눈물을 보였지만 김 씨의 마음은 이미 돌아선 뒤였다.

◆남은 것은 병든 몸

김 씨는 친구 소개로 대구에 있는 가정폭력 쉼터에서 병든 마음을 치료했다. "왜 그렇게 내 인생을 허비하고 살았는지, 지난 세월이 아까웠어요." 쉼터를 나온 김 씨는 이혼 위자료로 받은 돈으로 보증금 600만원에 월세 17만원짜리 집을 구했다. 생활비는 주민센터에서 공공근로를 하고, 지인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벌어 썼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은 2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뿐이었다.

열심히 살면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말, 배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그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초라한지…." 기독교 신자인 김 씨는 담임 목사를 찾아가 울부짖었다. "신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십니까. 하나님이 있기는 한 겁니까!" 4일 오후 4시 김 씨는 위암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대에 눕는다. 그리고 다시 두 손 모아 기도할 것이다. '신이 살아 있다면 제발 나를 버리지 마소서.'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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