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공무원에게 책임 묻는다고 물가 잡히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각에 '물가관리책임실명제' 도입을 지시했다. 품목별로 담당 공무원을 정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책임을 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1980년대 초 경제기획원 시절 존재했던 '쇠고기 국장' '배추 국장' '짜장면 사무관'이 부활하는 셈이다. 치솟는 물가를 기어코 잡겠다는 의지는 가상하지만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물가가 폭등하자 정부는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짜냈다. 관세 인하, 비축 물량 조절 등은 물론이고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을 동원해 가격을 인상하는 업체의 팔을 비틀었다. 물가 조사 대상 품목에서 가격이 급등한 금반지를 제외하고 품목별 가중치를 조정하는 '통계 마사지'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물가 상승률은 4%에 이르러 관리 목표를 넘어섰다.

행정력으로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소위 'MB 물가'의 실패에서 이미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2008년 3월 서민생활과 직결된 52개 품목을 선정해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가격은 더 올랐다. 물가 관리 실패의 원인은 명약관화하다. 바로 거시 정책의 부재다.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이 정부의 일관된 방향이다. 한국은행도 금리 동결로 이에 화답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고물가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데 미시적 접근으로 물가가 잡힐 리 만무하다.

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지라고 하는데 과연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담당 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사표라도 쓰라는 얘긴가. 이런 방법으로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은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해답은 분명한데 자꾸 엉뚱한 길로 돌아가려 하니 참으로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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