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진퇴의 묘

나아감과 물러감의 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욕심이라는 것이 하도 유별나 한 번 생기기 시작하면 슬금슬금 끝이 없다. 이쯤이면 된 듯도 싶고, 한 발짝만 물러서면 다 알 것 같은데 이쯤이라는 때는 오리무중이고 그 한 발짝은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진퇴(進退)의 묘는 장량과 한신의 처신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둘은 중국 역사상 첫손에 꼽을 만한 재사(才士)이자 전략가였다. 유방을 도와 한(漢)을 세우는 데 최고 공신이 됐으나, 둘의 말년은 전혀 달랐다. 유방의 사람됨이 고생은 함께해도 부귀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던 장량은 모든 부귀영화를 떨치고 속세를 떠났다. 한신도 유방의 좁은 도량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설마' 하는 마음과 특출한 자신의 재능을 너무 믿어 부귀영화를 추구하다 끝내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본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12개 선거구 가운데 8개 선거구 주민 60% 이상이 현 국회의원 교체 의견을 보였다. 현직의 재선출 의사는 3개 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30% 이하였다. 대구에서만큼은 장기 집권한 한나라당으로서는 물갈이를 앞세울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런 가운데 대구의 현역 의원 가운데는 처음으로 4선의 이해봉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동안 송곳처럼 날아드는 당 내외의 쇄신 요구가 많은 부담이었을 것이지만 개인적인 바람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욕심을 버리고 어려운 결단을 내린 이 의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작금의 정치 개혁 요구는 특정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정치권 전체에 대한 시대의 흐름이자 자신을 뽑아 준 국민의 요구다. 옥석 구분 없이 싸잡아 개혁 대상이 되는 흐름이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 앞에서 개인적인 명분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한나라당'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다 낡은 갑옷이라도 입어야겠다고 고집하는 것 자체가 개혁 대상이다.

도덕경에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고 했다. 하지만 말을 몰라 실천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늘 '욕심'의 실체와 맞닥뜨려 진퇴의 때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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