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술은 꼭 필요한 비타민, 친해지면 건강해지겠죠"

8일 물러나는 김용대 대구미술관장

2년간 대구미술관을 이끌어온 김용대 대구미술관장의 임기가 8일로 끝난다. 김 관장은 수준 높은 미술관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2년간 대구미술관을 이끌어온 김용대 대구미술관장의 임기가 8일로 끝난다. 김 관장은 수준 높은 미술관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김용대(57) 대구미술관장의 임기가 8일로 끝난다. 대구시는 김 관장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대구미술관장 모집 공고를 낸다는 계획이다. 한국 큐레이터 1세대로 유일하게 국공립미술관 관장을 맡아온 김 관장은 그동안 대구미술관 준비과정부터 개관 후 6개월간 미술관을 운영했다. 김 관장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수준 높은 미술관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관장으로부터 지난 2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술관 주인은 대구 시민

"미술관은 작가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인은 시민이고 관장은 교육기관의 디렉터죠."

김용대 관장은 종종 미술관을 '학교'에 비유했다. 미술관이라는 학교에서 교장은 관장이고, 전시된 오브제들은 교과서다. 그래서 학생인 시민들을 위해 최상의 오브제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관장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도 '작가가 미술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잡음(雜音)들이 생겨난다는 것이 김 관장의 지론이다. 대구 역시 지역 작가들이 서운하게 생각해왔다. "지역 작가들을 육성하는 것은 대구시 문화정책의 영역이지, 미술관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것을 혼돈하면 안 되죠." 그는 '학교가 교과서 납품업자를 먹여 살릴 순 없지 않은가'라며 되물었다. 상업적인 아트페어 역시 지역 작가들만 모아놓으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작가를 발굴하려 애썼다. 세계적인 작가나 전시 속에 대구 작가를 넣어야 대구 작가의 위상도 높아진다고 2년간 강조해왔다.

그는 '미술관의 꽃'이라 불리는 컬렉션에 신중을 기해왔다. 그는 삼성 리움미술관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리움에서 최고 학예사들이 검토에 검토를 거쳐 작품을 구입하지만 전시를 하려고 보면 쓸만한 작품이 10%도 안 될 때가 있어요. 컬렉션은 적게 하더라도 최상의 작품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세금으로 운영해야 할 미술품 보관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지요."

◆ 미술은 삶의 문제

그렇다면 미술은 무엇일까. "미술은 그 시대의 큰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세부적인 테크닉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대구의 미술이 잘 되기 위해선 '대구'라는 도시 자체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술은 삶의 문제인 만큼 삶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도시 풍토가 결국 세계적인 예술가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그는 미술 작품 감상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좋은 작품은 '세포'가 기억합니다. 미술 지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좋은 작품은 창의적인 DNA를 자극합니다. 세포에 저장된 기억은 10년, 20년 후에도 떠오르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 자주 미술관을 접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문화가 혼혈되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로 충돌해야 발전이 있다는 것. 계속 끼리끼리 모여 있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게 문화라는 말이다.

◆ 우리나라 미술정책의 부재

외국의 경우 미술관 건립을 결정하면 가장 먼저 관장을 선임한다. 관장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장은 10~30년간 미술관을 만들어간다. 큐레이터도 마찬가지. 외국에서는 30, 40년씩 한 분야만 파고든 큐레이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관장은 물론이고 큐레이터까지도 2년 임기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풍토에서 세계적인 미술연구자가 나오기 어렵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은 그 지식이 방대할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우리나라 작가가 아무리 뛰어나도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힘든 이유는 이런 네트워크 속에 끼어들 만한 인적 자원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은 소장품과 성격이 없는 것도 문제다. 건물만 크고 내용물이 없다는 것. 김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은행 역할을 하고 나머지 미술관은 필요한 작품을 빌려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대구미술관의 기반을 닦다

지난달 모네의 증손자가 대구미술관을 찾았다. 모네의 증손자, 프랑스 미술비평가 필립 피게는 3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전시 작가인 프랑수아 모흘레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그만큼 김 관장의 안목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그의 가장 큰 후원자는 '시민'이었다. "처음엔 슬리퍼에 트레이닝 차림으로 미술관을 오던 시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작품 앞에서 에티켓을 지키려고 하는 변화와 전시에 대한 호응이 힘이 됐죠."

그는 한국 큐레이터 1세대로서 책임감을 갖고 일해 왔다고 자부한다. 자신이 가는 길이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년간 '영역 확장을 위한 퍼포먼스를 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있으니 인사 청탁부터 시작해 작품을 구입해달라는 청탁, 컬렉션에 대한 압력 등 갖가지 청탁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것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여러 잡음의 원인이 되기도 했겠지요."

이 정도면 대구미술관이 나아갈 길의 잡초는 뽑았다고 자부했다. 전시 역시 자신이 평생 저축해온 지식과 인맥 등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에 응모했다. 대구시는 여기에 괘씸죄를 물었다. 임기 한 달 반여 앞둔 시기까지 재계약 여부에 대해 대구시는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 "나의 선택이죠. 대구시가 아무 가능성도 보여주지 않는데 그것만 기다릴 순 없죠." 대구시의 전형적인 인선 방식이 이번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 것이다.

그는 미술관은 도시의 인공적인 숲이라고 강조했다. 빛과 공기, 온도가 중요한 만큼 대구미술관은 참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게 김 관장의 말이다. 그 숲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것은 시민들의 권리다.

"미술은 꼭 필요한 비타민과 같아요. 적은 양이지만 온몸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요. 내용을 잘 몰라도 자주 와서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세포와 지식이 새로워지면 그 사람이 건강해지는 거니까요. 대구미술관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행복했어요. 이런 기회를 준 대구에 감사합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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