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을 보좌해 천하를 통일하고 국가 체제를 개혁한 일등공신이었던 재상 이사(李斯)는 당연히 그 권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어느 날 축하연에서 조정의 문무백관이 모두 이를 찬양하자 이사는 오히려 탄식을 했다.
성자필쇠(盛者必衰'융성한 것은 반드시 쇠퇴함).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이사는 일족의 부귀와 영예가 극에 달했으니 앞으로 닥쳐올 몰락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사는 자신의 염려대로 환관 조고(趙高)의 참소를 받아 저잣거리에서 허리가 잘리는 극형을 받았으며 일족이 몰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른바 '항룡유회'(亢龍有悔)의 교훈이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부귀영달이 극도에 달한 사람은 쇠퇴하기 일쑤이니 만사에 더욱 삼가라는 뜻이다.
항룡유회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용이 승천하는 기세를 단계별로 비유하고 있다. 그 처음이 잠룡(潛龍)이다. 연못 깊이 잠복해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용이다. 다음은 현룡(現龍)이다. 모습을 드러내고 뜻을 천하에 펼치는 때이다. 그 다음은 비룡(飛龍)이다. 하늘을 힘차게 나는 용이니 최고의 지위를 추구한다. 그 비룡이 절정에 이르면 항룡(亢龍)이 된다.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공자도 항룡의 지위에 오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변화에 순응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겸손을 잃지 말 것을 경고한 말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항룡유회를 인용한 신년 메시지를 던졌다. "올해는 특히 대통령 선거가 있는 '용(龍)의 해'"라고 말머리를 꺼낸 박 의장은 "대통령이 되려는 대선 주자들은 '항룡유회'라는 옛말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대선 주자라 함은 현룡이나 비룡쯤 되지 않을까. 용의 승천을 꾀하는 한량들이 장사진을 이룰 소위 '선거의 해'를 맞아 더욱 의미심장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용의 눈물을 뻔히 보면서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비룡에 이은 항룡을 추구한다. 전직 대통령들의 사례가 이를 잘 웅변하고 있다. 조상 잘 만난 덕에 20대 후반의 나이에 이미 항룡이 된 북한의 김정은에게는 어떤 추락이 남아 있을까.
60년 만에 돌아왔다는 임진년(壬辰年) 벽두에 돌이켜보는 우리 스스로는 잠룡인가 현룡인가 비룡인가 아니면 항룡인가.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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