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 임진년 새해 첫날 황악산에 눈이 내렸다. 하나 둘 진눈깨비처럼 날리더니 일출 시간이 다가오자 제법 양이 많아져 온통 하늘을 수놓는다. 새해 첫눈은 진객(珍客)이다. 서설은 풍요의 상징으로, 예부터 상서로운 일이 있을 징조라고 반겼다.
이날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에 새해 해돋이를 보려고 30여 명의 산꾼들이 찾았다. 영하의 날씨에 새벽어둠을 뚫고 황악산을 찾은 이들에게 하늘이 또 다른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이들 마음에는 이미 임진년 해가 밝았으니 눈은 보너스인 셈이다. 눈이 내리자 바람도 잦아들고 날씨도 한결 포근하게 느껴졌다. 새해에는 서설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 국운이 융성하고 화합과 소통의 한 해가 되길 모두 기원했다.
" 투 타 타 타 타."
황악산을 담기 위해 헬기에 올랐다. 예천 천문우주센터를 이륙한 헬기(기장 김규환)는 기수를 서쪽으로 돌려 문경을 거쳐 곧장 황악산 방향으로 날아오른다. 헬기 고도가 500m에 이르자 영롱한 겨울 햇살을 받은 산과 들은 더욱 선명하게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발아래 펼쳐진 높고 낮은 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마치 임진년 새해를 축하하듯 승천하는 흑룡(黑龍)의 용틀임처럼 다가온다.
눈이 잠시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안 어느덧 황악산 기슭에 닿는다. 승용차로 2시간여를 달려야 하지만 하늘길은 30여 분 만에 도달하는 지척(咫尺)의 거리다.
황악산이 눈에 들어오니 발아래 경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철이 나란히 경주하듯 달리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사통팔달 김천'은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하늘에선 본 황악산
헬기가 추풍령을 지나 괘방령으로 접근하자 칼날처럼 줄지어 솟은 능선이 마중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백두에서 한 달음에 내달려 설악'태백을 거쳐 황악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 산행을 즐기던 산악인들이 헬기가 능선으로 접근하자 하늘을 항해 손을 흔들어 준다,
헬기는 곧장 직지사로 달음질한다. 헬기에 동승한 사진작가는 연방 '찰칵 찰칵' 셔터를 누르며 아름답게 수놓인 겨울 황악산을 담느라 손길이 바쁘다.
비로봉(1,111m) 정상에 이르자 8부 능선 위쪽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황악산은 설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비로봉 위를 한 바퀴 선회하자 헬기 바람을 타고 눈발이 휘날린다. 정상에 있는 나무'풀 등에는 눈꽃이 피었다. 겨울 들어 이곳에는 여러 차례 눈이 내렸다. 그래서 산 정상은 흰 옷을 입고 있다.
비로봉은 혹한에다 진눈깨비까지 날린 때문인지 생명체의 움직임이 없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태곳적 정적이다. 황악산 표지석만이 주인임을 뽐내며 굳건하게 찬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황악산 봉우리들
정상에서 기수를 남쪽 방향으로 틀자 바람재 능선이다. 형제봉을 지나 능선을 따르자 여정봉(1,034m), 삼성산(985.6m)이 잇따라 모습을 보인다. 이어 높이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삼도봉(1,176m)이다. 삼도봉은 높이가 황악산보다 60여m나 높다. 정상에는 충청'전라'경상 3도(道) 화합의 상징인 '삼도봉대화합기념탑'이 눈 속에서 자리를 틀고 있다. 하나의 몸을 가진 세 마리 거북이를 받침으로 삼고 세 마리 용(龍)이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임진년 새해를 기다려온 듯하다.
대덕산(1,290m)을 건너 김천 대덕과 경남 거창을 연결하는 우두령이 보인다. 이 능선을 따라 덕유산, 삼봉산 등을 거쳐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면 지리산에 닿는다. 이른바 한반도의 맨 아래 백두대간의 종착지다.
황악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두고 북동쪽으로는 백운봉(770m), 운수봉(680m) 등을 거느리고 있다. 이어 여시골산(620m)을 거쳐 괘방령을 지나고 가성산(716m), 눌의산(743m)을 거쳐 추풍령을 만난 뒤 북으로 먼 여행을 계속한다.
백두대간 능선을 벗어나면 능여계곡 쪽에 신선봉(935m), 망월봉(597m) 등이 있고, 영동 쪽으로 곡천산(1,025m) 등 크고 작은 봉우리가 황악산을 떠받치고 있다.
천년고찰 직지사를 중심으로 보면 황악산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쳐 품고 있는 형국이다. 학의 품 안에 명적암, 중암, 백련암, 운수암 등 직지사의 유서깊은 암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똬리를 틀고 새해 햇살을 받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맑게 갠 화창한 날에는 비로봉 정상에서 동(東)으로 금오산과 팔공산이 보이고, 멀리 남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서로 민주지산도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헬기로 황악산을 찾은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더 좋은 경치를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정상인 비로봉 부근에는 진눈깨비가 휘날린다. 눈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어둡게 하고 있다. 정상 부근이 차츰 뿌연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한복을 걸친 여인네처럼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서일까?
바람이 거세지고 점차 날씨가 험악해져 더 이상 산의 아름다움을 탐할 수 없어 아쉬움을 두고 기수를 돌렸다.
헬기를 운행한 김규환 기장은 "하늘길로 몇 번 지나는 다녔지만 가까이에서 황악산을 보기는 처음인데, 다소 완만한 여성스러운 모습 때문인지 쉽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멀리서 산을 볼 때보다 가까이 접해 보니 산세가 훨씬 가파르고 험준하다. 우리나라 어떤 산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감탄했다.
새해에 하늘에서 본 황악산은 왠지 모를 설레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글'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작가 texca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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