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백일장] 동치미 막국수/엄마의 하루/이별은 아프다/새해엔

수필 ♥동치미 막국수

그날이 기다려진다. 섣달 초엿새. 그날은 내가 세상의 빛을 본 지 예순한 해가 되는 진갑이다. 애들 커가는 걸 보며 토닥토닥 살아온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서쪽을 향해 기울어가는 해처럼 내 몸도 예전 같지 않다.

며느리와 딸들은 내게 줄 선물을 물어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강원도의 동치미 막국수만 있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평소와 다르게 식탐을 하는 나를 애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간매일에서 구활 선생님의 막국수여행을 읽었다. "강원도의 비탈진 밭에서 수확한 약간 까끌까끌한 기운이 도는 국수에 제자리 무 배추로 담근 동치미 국물"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목에서 꿀꺽이는 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토속음식을 즐겨먹는 나는 외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만드는 시래깃국이나 청국장을 별미로 알며 살아왔다.

이제 지역에서 유명한 토속음식을 먹어보고 싶다. 더 늙기 전에…. 그동안 마지못해 따라가 먹던 음식과 달리 맛있게 먹는 내 모습에 애들은 흐뭇해할 것이다. 나는 애들 기분을 맞춰주고, 애들은 내 기분을 맞춰주고 아마도 그런 날이 될 것 같다.

이열치열이라고 땀 흘리는 계절엔 삼계탕을 찾듯이, 백설이 하얀 비단처럼 깔린 강원도에서 먹는 동치미 막국수.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가 보다.

권오숙(대구시 북구 대현2동)

♥엄마의 하루

엄마의 팔 다리는 무쇠팔 무쇠다리다. 만화, 마징가 Z를 연상케 할 정도로 팔다리가 무쇠처럼 단단한 줄 알았다. 엄마니까 챙겨주어야 하고, 낳았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휴일이면 더 일찍 일어나 주중에 못하신 빨래 삶기, 발코니 청소 등 꼼꼼한 일을 해야 했던 엄마, 하루가 가면 또 다른 하루가 오듯이 엄마의 일상도 그냥 주어지는 자연의 흐름처럼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두터운 이불을 덮고 눕고 말았다. 심한 몸살이 이번에는 좀 오래가는 것 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프다는 엄마, 심지어는 머리카락, 손톱마저도 아프다고 하시는데 그 아픔의 정도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렇게 몸살을 앓던 것이 지난 금요일부터다.

월요일 아침은 그야말로 전쟁 중이라 할 만큼 후다닥거리고 모두다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엄마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월요일 아침은 최악이었다.

아버지는 직장이 멀어 아침밥도 굶은 채 일찍 출근하셨고 아무리 깨워도 막내 남동생이 일어나지 않자 고함을 지르는 여동생, 아침부터 고함소리가 창문 밖으로 나간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엄마의 말씀이 떠올라 스프레이를 남동생의 얼굴에다 뿌렸는데, 이불을 적시고 말았다. 그동안 엄마는 어땠을까?

우리를 학교 보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 준비하시고, 또 엄마의 출근을 위해 동분서주하여 화장도 못하신 채 급히 나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고맙고, 감사하고. 죄송한 맘 간절하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면 엄마의 쾌차하신 모습 기대된다.

박예진(대구 수성구 황금동)

♥이별은 아프다

이별은 아프다

죽음은 더 아프다

그런데 난 오늘도 거짓말을 한다

기억의 저편에서 손짓하는

쓸쓸함에 악수해놓고

무심한 듯 아닌 것처럼

잊어버렸노라며

아프지 않은 척 웃어 보이고

슬프다 말하면 눈물이 넘쳐 날까봐

보낼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피 흘리는 그리움에게

숨 쉴 때마다 아픈 것 괜찮다 하며

묻을 수 없는 힘든 이별 앞에서

여전히 슬픔 숨긴 채

거짓말을 했다

이별은 아프다

죽음은 더 많이 슬프다

울음을 게워버린 텅 빈 위 속으로

꾹꾹 쑤셔 넣은 추억 그리고 이름 석 자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조차

무심한 듯, 절대 아닌 것처럼

이지희(대구 수성구 범어3동)

♥새해엔

새해엔 고운 마음 언제나 예쁜 마음

싫어도 표 안내고 미워도 미워 않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세상살이였으면!

새해엔 우리 모두 소원을 이루어서

뜻하는 모든 일이 술술술 잘 풀려서

하하하 행복하게 웃으며 즐기면서 삽시다.

그것이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이요

이승에 남아있는 선택된 인생이요

따지면 짧은 인생이지만 안 따지고 삽시다.

피재우(대구 수성구 만촌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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