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호박에 줄 긋기

1844년 프랑스 정부가 수입관세를 올려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 하자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다음과 같은 포복절도할 글로 정부를 비꼬았다. 바로 경제학사에 길이 남는 명문, '양초업자의 탄원서'라는 우화이다.

"양초, 양초 심지, 심지 절단기, 칸델라, 촛대, 가로등, 소등기 등의 제조업자들과 등유(燈油), 수지(獸脂), 송진, 알코올 등의 생산업자, 그리고 모든 조명 관련업자들이 고결하신 국회의원님들께.

저희는 저희에 비해 지나치게 월등한 조건에서 빛을 생산해 내는 외부 경쟁자 때문에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가와 고품질로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자는 바로 태양올시다요.

나으리들께서 이 불평등을 시정할 법을 하나 통과시켜 주셨으면 하고 저희는 탄원하는 바입니다. 낮에는 국민들의 모든 창문과 지붕창, 채광창, 곁문, 커튼, 블라인드 등을 닫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이렇게 자연광을 차단하고 인공광의 수요를 창출해 내면 프랑스 국내에 번창하지 않을 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양초 원료인 유지방은 소와 양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프랑스 전역의 낙농업은 번창할 것이고… 선택을 하되 논리적으로 하십시오. 국내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거의 거저나 다름없이 값싼 외국산 철강, 곡물, 직물 등의 수입은 막으면서 참말로 거저인 태양광은 막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처사입니까!"

보호무역을 비판한 글이지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인간 세태 전반에 대한 풍자로 읽어도 훌륭하다. 그런 꼼수의 하나가 지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벌이고 있는 코미디다. 비대위는 당의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할 것을 검토 중이다.

바스티아가 양초업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난의 원인을 모든 빛의 근원인 햇빛으로 돌렸듯이 한나라당은 자신들에 대한 민심 이반의 원인을 보수라는 가치 전체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큰 착각이다. 민심이 떠나는 것은 보수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수구(守舊)라고 한다. 보수는 진보와 더불어 인간사회를 이끌어가는 두 날개 중의 하나다. 보수는 지켜야 할 가치이지만 수구는 버려야 할 탐욕의 쓰레기다. 보수란 표현을 없앤다고 한나라당의 체질이 바뀔까. 글쎄다.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호박은 보지 못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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