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들 사이에 '휠체어 성악가'로 널리 알려진 테너 황영택(44) 씨. 40여 년 그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파란만장'이다. 20대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장애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를 거쳐 성악가로 새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듯 인고의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황 씨를 만나 곡절 많은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20대 중반에 찾아온 불의의 사고
황 씨는 경기도 부천에 살고 있지만 고향은 경북 울진이다. 월송초교와 평해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에게 울진은 어린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마음의 터전이다. 황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했다. 하지만 포항제철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 정도 다니다 형이 운영하는 건설회사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 회사를 키워 보겠다는 일념으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포항제철에 과감히 사표를 던질 정도로 그는 패기에 찬 젊은이였다.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교제도 시작했다. 그의 앞길에는 장밋빛 인생만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스물다섯 되던 해 그의 인생에 먹구름이 찾아왔다. 건설현장에서 크레인을 조종하던 그에게 불의의 사고가 닥친 것. 기초 공사를 위해 설치한 높이 15m의 콘크리트 기둥이 넘어지면서 황 씨가 타고 있던 크레인을 덮쳤다. 2t 무게의 콘크리트 기둥에 깔린 크레인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안에 타고 있던 황 씨도 크게 다쳤다.
"사고 났을 때 장애인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 6개월 정도 치료하고 부러진 뼈만 붙으면 무사히 퇴원할 줄 알았죠."
하지만 불행이 닥쳤다. 사고 후유증으로 황 씨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하반신 마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넋을 놓았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보고 현실을 인식한 순간부터는 살 의욕을 잃어 버렸다.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운명을 갖고 태어났을까,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퇴원 후 그는 6개월간 술로 살았다. 깨어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어서 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랑의 힘으로 재활의 발판 마련
몸과 마음 모두가 피폐해진 황 씨를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감정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에게 사랑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든 치료제였다. "결혼 날짜를 잡아 놓고 사고를 당했습니다. 제 병간호를 하던 중 아내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퇴원 후 술로 세월을 보낼 때 아들이 태어났죠.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초라해서 제 자신이 미워지더라고요. 그 순간, 저를 위해 고생하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의 얼굴이 교차했습니다. 제가 아내와 아들에게 또 하나의 시련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책임감 있는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죠."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변신
황 씨는 매일 마시던 술을 끊고 재활을 시작했다. 재활운동으로 선택한 것은 테니스였다. 그동안 테니스 라켓 한번 제대로 잡아 본 적이 없었지만 테니스는 곧 그의 생활이 됐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테니스에 몰입하게 됐죠." 2년여 동안 재활운동을 하면서 테니스 치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린 그는 결국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라는 꿈을 갖게 됐다. 새로운 인생 목표가 정해지자 그는 보다 체계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수영과 웨이트트레이닝은 물론 단계별 테니스 레슨도 받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라켓을 잡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그는 1998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쁨과, 아내와 아들에게 모처럼 좋은 선물을 했다는 감격 때문에 올림픽공원에서 부천에 있는 집으로 가는 내내 울었습니다."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로 황 씨는 승승장구했다. 제13회 방콕 아시안게임 휠체어 테니스 남자단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테니스로 국가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성악가로 제3의 인생 시작
황 씨는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에서 은퇴를 한 뒤에는 특수체육을 공부해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성악가로 진로를 바꾸었다. 성악은 테니스만큼 생소한 분야였다. 황 씨의 음악 경험은 장애인이 된 후 신앙을 가지면서 시작한 교회 중창단 활동이 전부였다. "테니스를 통해 육체적 재활은 성공했지만 마음속의 아픔은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찬양을 하며 내면적 재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성악가가 되어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그들이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도 후진 양성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그는 결국 라켓을 놓고 음대 진학을 위해 수능시험 공부에 들어갔다. 서른다섯 나이에 수능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답지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수능 참고서를 가득 가져 온 것도 모자라 서울대에 다니는 제자 2명을 과외 선생으로 붙여 주었다. 또 연세대 음대에 다니는 한 대학생은 성악 실기 지도를 자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개인 교습을 무료로 받았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느지막이 시작한 고3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수능 공부와 실기 연습으로 꽉 짜여진 스케줄이 1년 동안 이어졌다. "공부를 안 하다 하려니 구토를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1년이 몇 년같이 느껴졌고, 왜 시작했나 후회도 밀려왔죠. 그럴 때마다 저를 도와주는 분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1년간의 혹독한 수험생 생활을 잘 견딘 황 씨는 2003년 성결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음대 생활도 쉽지 않았다. 특히 발성이 문제였다.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까닭에 음을 끌어올리는 것이 어려웠다. "성악은 횡경막 호흡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하체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공중에 떠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체 도움 없이 발성 밸런스를 잡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장애 학생이 처음 입학한 상황이라 교수들도 어떻게 발성을 지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황 씨는 자신에게 맞는 발성법을 찾기 위해 교수들과 머리를 맞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그는 발성 밸런스를 잡는 데 성공했다.
◆희망 메신저가 되다
대학을 졸업한 뒤 황 씨는 '장애인 인식 개선 희망 나눔 콘서트'를 통해 희망 전도사로 거듭났다. 지금까지 그가 참여한 희망 나눔 콘서트는 100회를 넘었다. 희망 나눔 콘서트를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한 황 씨를 보며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 지난해 4월에는 타이틀 곡 '넌 할 수 있어' 등 희망을 나누는 노래 10곡이 수록되어 있는 1집 앨범도 발매했다. 앨범 발매는 희망 나눔 콘서트의 연장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장애인들과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과 함께하는 희망콘서트'도 열었다. 색소폰 주자 심삼종, 소프라노 허진설과 함께한 희망콘서트는 연일 객석이 만원을 이룰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제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를 보고 장애는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관객들을 만날 때마다 보람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황 씨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전국의 병원을 찾아다니며 희망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그가 계획하고 있는 2012 희망콘서트는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주변의 후원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가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사회에 기부하고 싶습니다. 저와 뜻을 같이하고자 하는 분들의 도움(010-5312-3058, www.hwangyoungtaek.com)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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