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102세 암수술

지난연말에 한 병원에서 102세의 할머니가 대장암 수술을 받아 화제가 됐다. 100세 이상의 나이로 암 수술을 받기로는 세계 최초라서 기네스북에 오를 예정이란다. 우리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 고령화 사회가 급격히 도래하고 있다는 것, 요즘 같아선 나이는 정말이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등의 모두를 구차한 설명 없이도 조용히 웅변하는 사건이다.

의학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각종 학회를 가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어떤 질환을 두고 노년층에서의 연구, 또는 노년층과 약년층 간의 비교연구 등이 그러한 단골 메뉴 중의 하나인데 그때마다 또 역시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이면 그 나이를 노인층으로 하였는가? 도대체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연구마다 노인층에 대한 나이 설정이 제각각이란 얘기고 어디든 뚜렷한 단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에 대한 기준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가장 먼저 '개인적 지각에 따른 기준'이란 것이 있다. 얼핏 '자기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견지에서는 꽤 합리적일 것 같지만 '마음이 청춘이면 몸도 청춘'이란 얘기가 돼 객관성이 떨어진다.

다음은 '사회적 기준'이란 것인데 은퇴와 정년을 기준으로 한단다. 보통 학회에서 듣게 되는 궁색한 답변이 주로 이것인데 알다시피 취약한 구석이 너무 많다. 일단 직종과 직급에 따라 정년이 다르다. 은퇴를 놓고 보면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나빠진 경기로 인해 조기 은퇴가 속출하면 40대 노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평균 수명이 80세 가까이 된 요즘 같으면 겨우 반생을 살고 노인이 되어 버린다는 황당한 얘기다.

마지막으로 '연령 기준'인데 개인적 차이는 인정하지 않고 단일 연령으로 기준을 잡는 것이다. 100년도 훨씬 전인 1889년 독일에서 선정한 것이 65세였고 최근까지도 많은 곳에서 이것을 따른다는데 여전히 의문이 뒤따른다.

당시 조선 임금들의 평균 연령이 47세였고 불과 50년 전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52세였으니 그렇게 환산하자면 요즘 같아서는 도대체 몇 세부터를 노인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정설은 없다. 다만 최근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의학적 소견으로는 건강한 노년의 증가 추세를 보아 75세 이후를 노인의료의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의학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무조건 생명의 연장이라는 '삶의 양'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이제는 하루를 살더라도 편안히 사는 '삶의 질'에 목표를 두고 있다. 아마 102세 할머니가 암 수술을 받은 것은 '삶의 질' 문제이지 '삶의 양'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막 한 살을 더 잡수신 할머니께서 건강한 노년을 이삼십 년쯤 더 즐기시기를 간절히 바란다.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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