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 가득하게 줄 세워져 있는 동물들의 조각상들은 왠지 낯이 익다. 개구리, 돼지, 토끼, 거북이, 매, 산양, 코끼리, 코뿔소, 곰. 현대미술이 의미를 해석하기에 어렵다지만 이건 쉬워 보인다. 우리가 어릴 때 그림을 그린다면 가장 만만한 게 동물 그림이었다.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조각을 빚어내도 마찬가지였다.
한 공간에 모아놓은 동물상은 뭔가 뚜렷한 일관성이 없다. 칼 폰 린네가 창안한 동물분류학에 따라 계 문 강 목 과 기준에 의한 계통도 서 있지 않다. 스케일도 제각각이어서 가장 커야 할 코끼리는 제일 작고, 조그마한 개구리나 토끼는 원래 덩치보다 훨씬 불어나 있다. 아마도 작가는 나와 달리 분류하기에 관한 취미는 없는 것 같다. 대상을 따져 구분하고 이름붙이고 서로의 관계를 추측하는 일은 과학자들이 잘한다.
과학이 아닌 건 그렇다 치고, 전시 작품들은 예술로서의 일관된 기법도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벽에 걸린 부조 작업과 입체 조각 작업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어떤 작품은 아주 사실적인 부분까지 묘사되어 있는데, 어떤 작품은 비현실적으로 의인화된 것도 있다.
일관성을 굳이 따지자면, 본래 동물들의 색깔과 다른 인공적인 느낌의 색 형태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칠을 뿌려서 도색한 작품, 금박을 붙여 도장한 작품, 안료 속에 담갔다가 꺼낸 도금 작품 등으로 제각각이다. 금중기의 조각은 겉으로 보기엔 어린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 모음과 다름없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달리 속으로 섬뜩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인류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자연환경에 대한 경고가 그것이다. 우리가 아닌 남, 사람이 아닌 무엇은 일차적으로 자연이다. 그 타자(他者) 가운데 가장 일반화된 존재가 동물이다. 동물은 자연의 아이콘이다. 한스 요나스의 생태윤리학처럼, 조각가 금중기의 작업은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 맞추어 슬픈(그렇지만 아름다운) 동물들의 컬렉션으로 채워두고 있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금중기 개인전 '낙관적 형식':~14일 갤러리 분도 053)426-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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