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대입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전형이 확대되면서 고교생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다른 전형으로 눈을 돌리자니 이 전형으로 뽑는 모집인원이 많다는 게 마음에 걸리고, 대비를 하자니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과 학습만으로도 버거운데 각종 대회 참가 실적뿐 아니라 동아리활동, 독서활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합격자들의 소식은 입학사정관제전형 준비를 더욱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특출난 이력을 남기는 게 합격의 필수 요소는 아니다. 진로를 일찍 정하고 입학사정관제전형을 겨냥해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원하는 대학 진학에 성공한 두 고교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북대 생명과학부, 박인경 양
올해 경북대 생명과학부에 합격한 박인경 양(원화여고)은 경북대가 모범적인 입학사정관제 인재로 추천한 예비 신입생이다. 박 양의 사례를 보면 입학사정관제 합격의 키워드는 조기 진로 설정과 진로와 연계한 꾸준한 준비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박 양은 조부모의 암투병과 외조모의 당뇨병 치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찌감치 의약학계열 진학을 목표로 세웠다. 막연한 목표에 그치지 않고 진로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중2 때부터 고1 때까지 소아 당뇨캠프를 찾아가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초교 1학년부터 고3 친구들까지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방학 때 3박 4일 자원봉사를 했는데 꾸준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캠프에 참가한 교수님들께 조언을 구했죠." 이후 박 양은 학교에 갈 수 없는 소아암환자들의 학습도우미로 동산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당뇨환자들을 위한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책 쓰기로 이어졌다. 교내 논문 프로젝트 동아리에 가입한 박 양은 고2 때 대구시교육청이 주최한 책 축제에서 '소아당뇨 건강캠프를 통한 영양교육의 효과'라는 소논문을 전시하기도 했다. 당뇨를 비롯한 내분비계에 대한 관심을 더욱 발전시켜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다져졌다. 논문 작성 경험은 심층면접 때 큰 도움이 됐다. "'1차 당뇨와 2차 당뇨를 비교해서 말해보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건 자원봉사와 논문 작성 경험 덕분이었죠." 박양은 대학 3학년이 되면 같은 학부 내 생물학과로 진학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목표를 세웠다.
의사를 꿈꾸는 박 양에게 수학은 핸디캡이었다. 고1 진학 후 수학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2학년 때 교내 기숙사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수학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수능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교과서를 다시 보는 식으로 실력을 다졌고, 같은 해 6, 9월 학력평가에서 수리 영역 전교 1등을 차지하는 등 일취월장했다. 3학년 때는 교내 기숙사 전체 장을 맡으면서 리더십을 키우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박 양은 "환자의 이름을 한명 한명 다 외우는 마음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이영재 군
"크게 내세울 이력도 없는데 합격해 저 자신도 깜짝 놀랐어요."
영재(대건고)의 내신성적은 평균 1.9등급. 6월 수능 모의평가 때 성적은 언어영역 5등급, 수리영역 1등급, 외국어영역 3등급으로 수도권 상위 대학에 진학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재는 입학사정관제전형을 통해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 영재는 입학사정관제를 택하면서 고민이 컸다. 워낙 화려한 '스펙'을 가진 합격생들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들었다. 8월 중앙대에 원서를 접수할 당시 일본어능력시험(JPT) 3급 외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대신 영재는 어릴 때 받은 장 절개 수술 후유증으로 고교 1학년 때 1년을 쉬는 등 병마를 딛고 통상 외교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간 사연을 자기소개서에 고스란히 담았다.
"영양소 흡수가 제대로 안 되는 탓에 아직까지 수시로 병원을 드나듭니다. 그래도 숱하게 병원을 드나든 덕분에 진로는 일찍 정할 수 있었어요. 의료기기 등 병원에 수입품이 많은 걸 보곤 선진국과 기술 교류를 하면 국익에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1, 2학년 때 '한 문화재 한 지킴이' 동아리에서 활동한 것도 합격에 도움이 됐다. 동아리를 지휘해 학교예술제에 내놓을 보고서 등 전시물을 만드는 과정을 자기소개서에 담았다.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면접 때 대구향교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술술 설명할 수 있었다.
학급의 공부법 전도사를 자처했던 것도 영재의 자기소개서에서 눈에 띄는 부분. 3학년 때 어떻게 공부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는 친구들 얘기를 들은 뒤 한 달에 한 번씩 교실 뒤 게시판에 어려운 영어 문장, 꼭 알아야 할 수학 공식, 공부 계획표 작성 요령 등을 적어 붙였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준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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