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불친절한 시

밤새 불친절한 시를 읽으면

내 못 가 본 도시 리스본이

지구의 어느 끝에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막 리스본에 도착한 아침이 마가렛꽃을 밟으며 어느 집 안 뜰로 걸어가고

오래 참은 강물이 당나귀 울음소리를 낸다

읽을수록 면도날 소리를 내는 리스본

이로써 나는 불친절한 시를 읽다가

모르는 나라 수도를 떠올린 이유를 말한 셈이다

틀림없이 리스본에도 달팽이가 기고 솔붓꽃이 필 것이다

여자들은 빨리 말하고 남자들은 구형차를 몰고 외출할 것이다

내 못 가 본 도시 리스본

채소를 씻다 말고 시를 읽던 리스본 여자가

정오에 타호강변을 산책하리라는 걸 나는 한 줄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로써 나는 끝없이 리스본을 발음하면서

밤새 불친절한 한국의 시를 읽는 이유를 다 말한 셈이다.

  이기철

서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시를 써온 이기철 시인이 불친절한 시에 대하여 한말씀 하고 있습니다. 불친절한 시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기 어려운 시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특히 요즘 몇몇 젊은 시인들이 쓴 그런 시를 읽으면 머리가 아프지요.

그래서 시인은 리스본을 생각합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라는데, 왜 난데없이 리스본일까요. 아마도 발음이 '이 시부럴'과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아니면 불친절한 시들이 면도칼처럼 공격적이면서도 메마르게 '부스럭'거려서 그럴까요.

그러나 리스본이 난데없이 튀어나와서 우리는 덕분에 낯선 곳에서 아름답게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리스본이라는 이름 하나로도 이렇게 시가 아름다워지네요. 이것을 보면 불친절한 시에도 나름의 이유가 없진 않을 거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로써 몇몇 젊은 시인들이 불친절한 시를 쓰는 이유를 조금은 말한 셈인가요?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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