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호르스트 베셀은 나치당의 초기 멤버였다. 그는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인 1930년 매춘부를 둘러싼 시비가 화근이 되어 공산당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매춘부와 함께 살던 이 젊은 나치당원은 하루아침에 정치적 순교자가 되었다.
나치당이 당시 경쟁 세력이었던 공산당을 제압하기 위해 베셀의 죽음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그가 죽기 전에 지은 '깃발을 높이 올려라'라는 시는 훗날 나치당의 선전부장이 된 괴벨스에 의해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로 탈바꿈했다가, 히틀러의 나치당 집권 이후에는 당가로 채택되었으며 제2국가로 연주되기도 했다.
알렉세이 스타하노프는 소비에트 연방의 광부였다. 1935년 그는 독자적으로 고안했다는 채탄 공정 혁신을 통해 석탄 채굴 신기록을 세운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일약 사회주의의 노동 영웅이 되었다.
이를 빌미로 노동 생산성 향상과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우수성 홍보를 위한 스타하노프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가 광부로 일했던 도시 이름도 스타하노프시로 바뀔 정도였다. 그러나 스타하노프의 채탄 기술 개발과 잇단 채굴량 기록 경신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신빙성 논란이 있었다.
중국의 레이펑은 평범한 인민해방군 병사였다.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2년 사고로 순직했다.
그런데 그의 사후 마오쩌둥 등 공산당 지도자의 말을 인용한 일기가 발견되면서 모범 군인상으로 선전됐다. 마오가 직접 '레이펑 동지에게 배우기 운동'을 지시하면서 그는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의 고향과 순직 장소에는 기념관까지 설립되었다.
반공 구호를 상징했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의 주인공인 이승복의 경우도 인위적인 반공 영웅 만들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를 신격화하고 있는 희대미문(稀代未聞)의 북한 체제는 더욱 가관이다.
대중은 영웅을 갈망하고, 권력은 이를 잘 이용해 왔다. 그러나 진실은 머잖아 드러나기 마련이고, 인위적으로 탄생한 영웅은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지난해 여름 경기도 동두천시 수해 현장에서 시민을 구하다 순직한 것으로 알려진 조민수 수경의 죽음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옥조근정훈장까지 추서했는데 참으로 딱한 일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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