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정치와 문화, 혹은 문화와 정치

자치단체는 한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절대적이다.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치단체가 무리수를 두어도 문화예술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 괜히 나섰다가 소위 '찍히면' 후환이 두렵고, 또 그 무리수 뒤에는 같은 길을 가는 다른 동료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대구 문화예술계에서 일어난 몇몇 이상한 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어졌거나 봉합 중이다. 내막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별문제가 없지만 그 뒤에는 지역 문화 발전에 바람직하지 못한 개인 연줄, 정치적인 이해타산이 숨어 있다. 몇몇 언론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를 해결할 위치에 있는 인사가 권한을 휘두른 일이니 시정도 안 된다.

이상한 일들은 시군구가 설립한 법인에서 일어났다. 말이 사단법인, 재단법인이지 모든 예산을 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곳이다. 지난해 대구국제뮤지컬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사표를 냈다. 이사장과의 반목이 원인이었다. 이사장은 조직뿐 아니라 이사회도 파행으로 운영했다. 감사에서 판공비 과다 사용을 지적받았지만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아 감사 2명이 사퇴했다. 이어 정족수 미달의 이사회에서 직권으로 몇몇 후임 집행위원장 후보를 추천하고는 그중 한 명을 선임했다. 수성문화재단은 수성아트피아 관장을 정년 퇴임시켰다. 전문가를 초빙하는 개방 공모직에 정년을 적용한 것도 이상하지만, 재단 설립 때 정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관장을 선임하고는 1년이 지나고서 정년을 이유로 퇴진시킨 것이다. 재단 이사들과는 아무런 논의 없이 휴대전화 문자로 후임 관장 공모와 선임 사실을 통보했을 뿐이다.

압권은 달성군에서 일어났다. 달성군의회는 갓 출범한 달성문화재단의 올해 사업비를 전액 삭감했다. 갑자기 대선 후보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멘토인 법륜 스님의 달성군 강연을 두고 군과 의회가 마찰한 것이 그 이유로 거론됐다. 아무리 부인해도 8명 중 6명이 한나라당 소속인 달성군의회 의원들이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뒤풀이가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박 위원장은 전혀 몰랐겠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고 보니 과잉 충성에 박 위원장만 구설에 오른 셈이 됐다. 4월 총선에서 박 위원장의 지역구 불출마를 전제로, 출마가 유력한 전임 군수가 무소속인 현 군수에게 위력을 과시한 것이라는 뒷이야기는 양념거리다. 이 전임 군수는 박 위원장이 회장인 한나라당 달성군 당원협의회의 최고위 간부직에 있다.

이 세 가지 일은 뭔가 이상한데도 절차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의 두 일은 이사장의 고유 권한에 속하고, 달성문화재단의 예산 삭감도 의회의 고유 업무다. 수성아트피아 관장 건은 일부 이사의 반발 움직임이 있었으나 흐지부지됐고, 뮤지컬조직위원회 이사들은 최근 모임을 통해 이사장의 파행 운영을 바로잡을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들은 문화에 대한 이해에 앞서 자신이 가진 권한을 남용하는 데서 일어난다. 거기에다 개인적, 정치적인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으니 안에서는 도저히 풀 길이 없다. 오래전 한 선배 기자가 쓴 '문화목욕탕'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동네에 이름을 '문화'라고 지은 목욕탕이 생겼는데 이름이 문화라 하여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며 샤워를 한들, 문화인이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당시 대구시장과 경상북도지사가 공연장과 전시장을 많이 찾으며 문화시장, 문화도지사를 자임(自任)했는데, 실제로는 문화예술 발전에 별 관심이 없음을 빗댄 것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 내용은 아직 유효하다. 문화의 스펙트럼은 더 넓어져 광역자치단체뿐 아니라 기초자치단체까지 겉으로는 문화 발전을 외치고 있지만 속내는 전혀 아니다.

영어에 'Let bygones be bygones'라는 말이 있다. 지난 일은 잊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너무 자주 잊다 보면 이상한 일이 당연해지는 학습 효과가 생긴다. 힘을 가진 이가 입맛대로 문화를 휘둘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돈줄이 국민의 세금인 만큼 사용에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최소화는 사용처의 형평성이나 공평함, 타당성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말한다. 이는 문화예술뿐 아니라 모든 예산 지원 사업에서의 공통 요소다. 최근 일어난 일들은 문화 발전을 가장해 관리 감독 권한만 앞세운 것이어서 볼썽사납다.

鄭知和/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