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강신주/동녘

시는 짧지만, 무한한 고뇌와 사유의 세계 담겨 있어

활발한 대중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철학자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을 읽었다. 강신주가 생각하는 인문정신은 다른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영위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인이나 철학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만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므로 진정한 인문정신의 담지자들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굳이 시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까닭일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38년 발표된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일부이다.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일체의 것들을 눈으로 덮어버리고 나타샤와 함께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 마가리(오막살이)에" 살고 싶었던 스물일곱 젊은 시인. 저자는 이 시에서 '푹푹'이나 '응앙응앙'이라는 의성어에 주목한다. 감각의 풍성함! 백석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이란 오감으로 세계를 느끼고 살았다.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강신주는 나카무라 유지로의 '공통감각론'에 주목한다. 그는 시각 중심적인 현대 문명을 비판적으로 극복하여 풍성한 감각의 세계를 복원하려고 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유지로는 서양 문명사를 '감각의 재구성', 즉 공통감각의 논리로 해명하고자 한다. 중세 때에는 내면에 들리는 신의 목소리, 혹은 신에게 간절히 갈구하는 기도 등이 중요했기 때문에 오감 가운데 청각을 가장 중시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는 상황이 반전되어 눈에 보이는 현실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세상이 열렸기 때문에 시각이 가장 중요한 감각으로 대두하게 되었다. 나카무라 유지로는 앞으로의 문명은 촉각이 중심이 되는 공통감각의 세계로 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강신주는 백석이 풍성한 감각의 세계를 산 시인이라고 말한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 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신동엽의 '진달래 山川' 일부이다.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우리 역사에서 시의 소재를 즐겨 찾았던 자유의 시인 신동엽. 강신주는 여기서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클라스트르를 인용한다. 신동엽처럼 그도 "구름 한 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 보았던 사람이다.

클라스트르는 자신이 살고 있는 문명사회가 바로 야만사회이고, 문명사회가 조롱하는 야만사회야말로 사실은 문명사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체에 쇠꼬챙이를 꽂거나 날카로운 칼로 문신을 새기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잔혹한 통과의례에서 클라스트르는 그들에게 각인된 상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자유롭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겠다는 자유인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클라스트르는 권력, 즉 국가 기구를 막지 못하면서 억압과 지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국가의 출현으로 자유롭고 평등했던 인간적 공동체, 즉 진정한 문명을 지향했던 자유로운 공동체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철학자는 신동엽을 진정한 자유의 시인이라고 부른다.

이성복과 라캉, 최승호와 짐멜, 고정희와 시몬 베유, 한용운과 바르트 등 철학자의 시 읽기가 이어진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도 출간되어 있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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