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애드리브

돌발상황 대처 위한 노련한 배우의 무기…또 다른 재미

우리가 흔히 '애드립'이라고 부르는 '애드리브'(ad lib)는 배우가 공연 중에 대본에 없는 대사나 연기를 즉흥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예상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배우는 그 위기를 넘어가기 위해 애드리브를 하게 되고 그것이 적절했을 경우에 관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게 된다. 연극을 많이 본 관객은 그것이 애드리브임을 눈치 채고 오히려 더 큰 호응을 보내기도 한다. 또한 공연이 끝난 후 극장을 빠져나가던 관객들은 애드리브가 강한 배우를 두고 순발력이 강하다며 찬사를 보낼 수도 있다.

요즘은 애드리브에 강한 배우가 인기를 얻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 그 현상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나리오에 나와 있지 않은 대사나 상황을 애드리브로 표현하는 개성파 배우들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이미 영화에서 안방극장까지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그들의 애드리브에 푹 빠져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은 배우의 애드리브를 기대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애드리브의 재미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애드리브가 필요한 일차적인 이유는 갑작스러운 사고, 즉 예상하지 않은 돌발 상황 때문이다. 이는 무대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배우가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자 경험 많고 노련한 배우의 무기이기도 하다. 애드리브를 이용해 무대 위에서 일어난 돌발 상황, 즉 사고를 관객이 느끼지 못하도록 배우가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말하는 사고가 화재와 같은 큰 사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스태프들의 단순한 장비 운용 실수나 기계 장치 등의 결함으로 인한 무대, 조명, 음악 등의 실수를 의미한다.

물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태프들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관객의 작품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에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만나고 있는 배우가 애드리브를 활용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해결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배우의 애드리브로 인해 무대의 실수를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실수를 알아챘으면서도 배우의 애드리브 때문에 유쾌하게 넘어갈 수도 있다. 때로는 이런 점을 고려해 관객의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실수인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갑작스런 상황 때문에 당황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재미를 느끼며 즐거워하는 관객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 위의 돌발 상황에는 스태프들의 실수 외에 배우의 실수도 있다. 이 경우 실수한 배우는 당황하게 되고 그럴 때는 상대 역의 배우가 애드리브로 상황을 수습하기도 한다. 대사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표적인데 노련한 배우의 경우 실수를 하고도 자기 스스로 애드리브를 통해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물론 상대 배우가 적절한 애드리브로 그 애드리브를 받아주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결국 배우는 액션과 리액션이라고 하는 서로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때때로 그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더 큰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것이 라이브 공연이라는 연극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에 크게 어긋나는 애드리브라면 그것은 실패한 애드리브가 되고 만다. 애드리브도 결국은 그 배역의 성격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 미리 준비한 애드리브도 있다. 연습과정에서 나온 배우의 애드리브가 작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배역의 성격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경우에는 연출의 선택에 따라서 애드리브가 정식으로 대본 속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작가나 연출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창작 초연작의 경우에는 그것 또한 대본을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다.

관객들이 애드리브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는 사실 이미 대본에 있던 것이거나 연습과정과 공연과정을 통해 미리 맞춰 본 것을 애드리브인 척 선보이는 것이 있다. 그 순간 그 애드리브는 더 이상 애드리브가 아니라 정해진 약속에 의한 연기다. 그래서 일부 배우들은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애드리브를 몰래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애드리브를 위한 애드리브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모든 부분에서 연습한 대로 실수 없이 잘 이뤄진다면 애드리브는 필요가 없다. 애드리브는 약방의 감초가 아니라 잘못 쓰면 건강을 해치는 독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물론 독은 잘만 쓰면 최고의 명약인 것도 사실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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