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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臥遊山水(와유산수)

오늘도 칼날 같은 바람이 분다. 이런 날엔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공상에 잠기곤 하는데 벽에 걸린 그림 한 점과 여유로이 노니는 것이 제격이다.

작년 연말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전시기간 9일 내내 칼바람이 몰아쳐 전시장은 스산했다. 덕분에 나는 그림과 마음껏 와유(臥遊:누워서 노닌다, 산수화를 감상한다)를 누릴 기회를 얻었다.

나는 산수를 즐겨 그리는 화가다. 진산진수의 산수를 바탕으로 정신적인 세계로의 융합을 이루는 산수는 그림의 모티브로서 아주 흥미롭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산수는 인간이 몸을 의탁해서 살 수 있는 존재이거나, 인간을 감싸줄 수 있는 이 산수는 자유로이 노닐어 볼 만하고(山水風趣) 살아 볼 만한 대상이다. 나는 산수를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산수실경에 직접 발을 디디며 화첩을 들고 다니는 진경산수화가는 아니다. 드문드문 찾아가는 이름조차 알 필요 없이 그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오면 그만이다. 산수는 요람과 같이 느껴진다. 산수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꿈을 늘 꾼다. 꿈꾼 것은 한 장면 한 장면 화면(畵面)으로 채워진다. 나는 산수 안에 상생(相生)하는 모든 생명체, 그 자체가 우주인 것 그것 모두를 사랑한다. 산수를 그렇게 동경하고 황홀해하면서 다만 와유로서의 산수를 그리게 되는 것은 게으른 천성 덕분이다. 와유산수에 관한 훌륭한 변(辯) 중에 중국 북송시대 산수를 미학적 관점에서 논술한 곽희의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으뜸이다.

"군자가 산수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취지가 어디에 있는가! 정원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천품을 수양하는 것은 누구든지 언제나 그렇게 거처하고자 하는 바이고, 샘물과 바위에서 노래하며 자유로이 거니는 것은 누구든지 언제나 그처럼 즐기고 싶은 바일 것이다.(중략) 임천(林泉)을 사랑하는 뜻과 구름과 안개를 벗 삼으려는 것은 꿈속에서도 그리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과 귀가 보고 듣고 싶은 것이 단절되어 있는 형편이므로 지금 훌륭한 솜씨를 가진 화가를 얻어 그 산수 자연을 울연(鬱然)하게 그려낸다면 대청이나 방에서 내려가지 않고도 앉아서 샘물과 바위와 계곡의 풍광을 한껏 즐길 수 있으며, 원숭이 소리와 새 울음이 흡사 귀에 들리는 듯하고 산빛이 물빛이 어른거려 시야를 황홀하게 빼앗을 것이니, 이 어찌 남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완전하게 사로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이 산을 그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근본 뜻이다."

산수화는 산속에 은둔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매여 있는 사람에게도 산수 그림을 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자연 속을 여행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아직 바람이 많이 분다. 근처의 전시장을 찾아 산수풍경을 그리워하며 임천이 있는 그림 안을 산책하거나, 집안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사색공간 있는 그림 한 점 걸어두고 따스한 차 한잔 더불어 노닌다면 행복감 또한 일품이 될 것이다. 와유는 선택이다.

변미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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